요즘 대한민국 패션시장 트렌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성비’다. 말 그대로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무조건 최저가를 외치기보다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을 원한다. 불황으로 가격에 민감해진 이유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SNS에 업데이트되는 구매 후기로 소비자들이 제품을 스스로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SPA 자라·H&M은 현지보다 비싼 국내 가격정책으로 성장률과 수익성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다. 국내 최초 단일 브랜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유니클로의 성장률은 작년 하반기 기점으로 한자릿수로 꺾였으며 포에버 21과 조프래쉬는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활약이 주춤하는 사이 토종 패션 브랜드는 국내 시장에서의 약진과 함께 활발한 해외 진출로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가능성이 차오르는 곳, DDP 공공 패션 쇼룸(showroom) ‘차오름’
최신 패션 트렌드를 보기 위해 패션쇼 시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서울시가 지난 4월에 동대문에 오픈한 공공 쇼룸 ‘차오름’이 있기 때문이다.
’차오름’은 동대문 도매상가를 찾는 바이어에게 신진 디자이너 및 유수 브랜드의 다양한 패션상품을 전시하고 수주상담을 진행하는 ‘공공 패션쇼룸’이다. 디자이너들의 상품과 정보를 제공하고 해외 수출을 돕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픈 당시 약 223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98개 브랜드, 1622개 상품을 전시했고 중국 대형유통사인 ‘전국 화련백화점그룹’, 중국 최고의 온라인 패션 유통업체 ‘한두이서’ 등 92명의 바이어가 내방하여 수주상담과 디자이너 협업논의를 진행한 성과를 얻었다.
쇼룸은 연간 200여개의 서울소재 패션 중소기업·디자이너·예비창업자 등을 모집해놓고 각 시즌 별 콘셉트에 맞는 샘플을 편집해 전시하는 순환 입점방식으로 운영된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거래가 어려운 경우 공공브랜드인 ‘차오름’의 이름으로 판매도 가능하다.
매 시즌 유망한 신진 디자이너들과 패션 소상공인들은 차오름을 통해 ‘큰 손’들을 만나 매출과 인지도가 성장하고 있다. 동대문 쇼룸 ‘차오름’은 판로개척의 플랫폼을 넘어 대한민국의 패션을 이끌어나가는 활력이 되고 있다.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만나는 ‘메이드 인 (made in) 남평화시장’ 수제가방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가방의 무려 70%를 생산하는 곳이 있다. 바로 남평화시장이다. 가방과 의류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도매시장인 남평화시장에서는 무려 30~40년 경력의 장인들이 명품 못지 않은 고급 수제 가죽 가방을 생산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남평화시장을 떠올리면 어딘가 동대문 시장에 위치한 허름한 도매시장을 떠올린다. 이곳에서 제작된 품질 좋은 가죽 가방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시장 가방’으로 평가 절하 되어왔다.
이런 남평화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주거래처인 도매상이 아닌 소비자와 직접 만나면서도 브랜드 이미지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매장’이 탄생한 것이다. 바로 박의식 남평화상가 대표가 서울 연희동에 새로 오픈한 커피전문점 카페 스케네 브라운(Cafe SKENE BROWN) 매장내 가방숍, 다시 말해 ‘숍인숍’ 개념으로 입점한 가방 매장이다.
이 카페는 마치 명품 가방 매장의 VIP가 되어 조용히 차를 마시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원래 전시용으로만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많은 고객들의 요청으로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숍인숍 가방 매장이 향후 매장 확대를 통해 남평화상가뿐만 아니라 신평화, 동평화 등 8개 동대문시장의 공동브랜드 아이디어를 실천할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명 브랜드에서 유명 브랜드로… 박람회에서 판로 개척한 한복 브랜드 ‘데일리한’
‘개화기 이후 이렇게 일상에 한복이 나타난 적 없었다’라는 말이 생겨 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처럼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아닌, 고궁이나 관광지에서 한복을 입고 SNS ‘인증샷’을 찍는 것이 일상생활 속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 성장 단계에 들어선 생활한복 시장은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은 영세업체들이 많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을 검색하기보다 백화점이나 소셜 커머스 같은 기존 유통 채널을 통해 구입한다. 이 때문에 업체들이 대형 유통채널에 입점하려 해도 높은 수수료와 낮은 브랜드 인지도 탓에 쉽지 않다.
생활한복 브랜드 데일리한 박진형 대표는 이런 고민으로 올해 초 소비재 박람회인 ‘메가쇼’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형 유통업체를 거치치 않더라도 고객과 국내외 바이어에게 직접 브랜드를 알리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 대표는 박람회 기간에 부스를 찾아오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SNS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하고, 여러 바이어를 적극적으로 만나 상담도 거쳤다. 그 결과 박람회 후에 카카오의 주문생산 플랫폼인 ‘메이커스’에 입점하게 되었다. 최대 물량으로 진행했는데 모두 완판되어 박대표도 놀랄 정도였다.
자체 온라인 몰에서만 판매했던 작년 하반기엔 매출 5000만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억 여원으로 반년 만에 매출이 4배나 껑충 뛰었다. 박 대표는 향후 오프라인 매장 오픈과 편집샵 확대를 통해 50%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데일리한 박진형 대표는 “박람회 이후 확실히 타사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기회가 많이 생겼다”며 “앞으로도 고객들을 만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브랜드가 커나갈 수 있도록 홍보활동이나 유통 판로 확장에 지속적으로 힘쓸 예정”이라고 전했다.
메가쇼 김신 대표는 “고객들이 브랜드만 보고 쇼핑했던 시대는 지난지 이미 오래”라며 “그동안 우수한 품질의 상품들이 낮은 인지도로 인해 대형 유통 채널에 입점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소비자들의 인식이 진화하면서 이런 상품들도 쇼룸과 박람회 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통 판로를 다각화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재우 기자
토종 유통 플랫폼, 패션 브랜드에 날개를 달다
입력 2016-11-07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