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국정농단에 대한 극심한 분노, 나라가 어찌될까 두려운 불안. 집권여당은 불안을 키워 국면 수습에 나서고 있고, 거대야권은 분노를 주목하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높여가고 있다. 이 밀접하고도 거대한 간극 속에서 대선을 1년 앞둔 2016년 말 대한민국이 가본 적 없는 길로 치닫고 있다.
분노
과거 권력형 비리는 대부분 국정 운영과정에서 대통령 친인척이 끼어들어 위세를 과시하고 뒷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세를 이용코자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기업들은 구체적인 청탁은 물론 보험용으로도 관리에 나섰다. 학연·지연이 씨줄날줄로 엮이니 사방팔방에서 민원과 청탁이 빗발쳤다. 원래 민정수석실은 그런 사람들을 관리하려고 만든 부서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사건과는 궤를 달리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박근혜 대통령을 어린 시절부터 돌보던 비선 ‘가족’이 있다.
②대선 전반을 도우며 대통령을 ‘아마’ 만들었을 것이다.
③청와대 주변 인물들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④인사에 개입했다.
⑤정체불명의 조직이 생긴다. 낙하산이 내려앉는다. 이 조직이 장관마저 흔든다.
⑥국책 사업에 ‘사(私)’가 낀다. 나라가 세금을 대 최씨 사업을 도왔다.
⑦본인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덕을 봤다.
⑧정부 부처는 물론 대학까지 나서 최순실 일가의 뒤를 봐준다.
⑨대통령과 국가 중대사마저 논의하기 시작했다.
⑩지금도 대통령은 그를 감싸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이를 감시하지 못했다. 이를 지적하려던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오히려 사직했다. 국민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지만 검찰 출신이 꿰찬 ‘검찰 공화국’ 정부는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몰상식, 파렴치, 불합리, 박탈감.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이런 감정이 정부 태도와 맞물려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대표는 “20대 국회는 합리와 불합리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집회 참석 인원만 20만명. 1987년 6월 항쟁으로 갈 것인가, 2008년 광우병 소동에 그칠 것인가. 정치권은 국민 분노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남은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불안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사라진다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책임총리제와 거국내각은 법률적 용어가 아닌 정치 용어다. 여야는 이러한 정치 행위를 통해 국면을 수습하려 하고 있다. 특히 절벽 끝에 매달린 정부·여당(엄밀히는 친박세력)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를 내세워 ‘책임총리’ 틀안에서 사태 수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시작부터 틀렸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거국내각을 만들려했다면 야권과 협의해야 하는데, 야권 인사를 앉혔으니 거국내각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여권 행보가 괘씸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총리 임명안이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황교안 총리 이임식을 시도한 것은 일부러 국정공백을 초래해 박 대통령에 재기 기회를 주려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개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던 친노(노무현) 대선주자들 조차 이제 김 내정자에 서운함을 내비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6일 자정즈음 페이스북에 “(김 내정자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총리 제안을 수락하셨을 것이다. 내가 아는 김병준 총리는 그런 분”이라면서도 “그 믿음으로…총리 수락을 철회하길 부탁드린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시간 지연책에 이용당하시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라고썼다.
내치를 잃은 대통령에게 외치인들 먹힐까? 책임총리가 등장해봤자 결국 다시 ‘대독총리’가 되진 않을까? 거국 내각이 구성되면 야권은 수권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 5년마다 맞춰 돌아가던 정권 테이블은 과연 4년 만에 정상 작동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국민적 불안의 근원이다. 수습책으로 거국내각은 물론 조기대선론, 개헌론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불과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모든 것이 정략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기대선론은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하다. 후보로 거론되는 시도지사들이 일제히 뛰어나오고, 궁지에 몰린 여권에서도 여러 후보들이 난타전을 벌일 것이다. 내년 1월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개헌론은 국회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당장 4년 중임 대통령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를 두고도 개헌 세력간 입장이 다르다. 여기에 3당 체제가 가져다 준 정계개편론까지 더해지면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조차 마지막 탈출구로 정부주도 개헌론을 꺼내들었을까.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북핵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고, 중·미 관계는 악화일로이며, 경제는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를 두고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냐, 단계적 연착륙을 시도할 것이냐, 시험대에 올라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