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인영이가 아프기 직전 대전에 있는 놀이동산에 갔었다. 돈 몇 푼 아낀다고 엄마와 윤영이만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언니와 엄마가 놀이기구를 탈 때 내게 안긴 인영이는 신기한 듯 쳐다봤다. 자기도 타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다음에 오면 같이 타자며 달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영이가 아팠다. 가족 나들이는 그날이 마지막이 됐다. 아내는 종종 그날 인영이 놀이기구를 못 태워준 걸 후회하며 울었다. 그때마다 다 나으면 또 가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솔직히 그날이 올까 싶었다. 아득했다.
쉬는 금요일, 에버랜드에 갔다. 인영이 아프고 난 뒤 제대로 된 첫 가족 나들이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인영이 입원 동기 친구들이 최근 교외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온 가족이 예전처럼 놀이동산에 가는 게 소원이라 노래한 윤영이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전날 부서 회식으로 새벽 1시 넘어 서울서 돌아온 탓에 9시쯤에야 눈을 떴다. 두 아이는 8시 전부터 깨서 아빠 못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유모차를 빌려 언니 파카로 인영이 몸을 돌돌 말았다. 이번에는 인영이도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가장 먼저 유아용 자동차를 태워줬다. 인영이는 긴장한 채 핸들을 꼭 잡았다. 탈 때는 웃지 않더니 타고 나서 “재밌었어?”라고 물어보니 “응, 응”했다. 놀이공원의 백미 회전목마를 타고, 퍼레이드를 보여줬다.
놀이기구 몇 개 타고 점심을 먹고 나니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인영이가 졸려했다. 날씨도 싸늘해 재울 요량으로 유아용 실내 놀이터에 데리고 들어갔는데 아뿔싸 판단미스였다. 매번 유튜브로 보기만 했던 정글짐을 보더니 잠이 확 달아났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았다. 인영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뿌듯했지만 한편으론 실내에 아이들이 많아 걱정이 앞섰다. 거기다가 인영이보다 두어살 많아 보이는 애와 부딪혀 넘어졌는데 일회용 마스크가 찢어졌다. 당장 마스크를 갈아야 돼서 엄마한테 가자며 데리고 나왔다. 윤영이와 놀고 있는 엄마를 만나 마스크를 바꾸고 다시 실내놀이터로 향하는데 인영이가 잠이 들었다.
그나마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곤히 자는 인영이를 보고 있자니 주책 맞게 눈물이 났다. 여름휴가 시즌 무균실에 입원해 있는 인영이한테 장난감을 사다주러 마트에 갔다가 울었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여름 물놀이 용품을 고르던 가족들 모습에 울컥했지만 이번에는 우리도 그 가족처럼 됐다는 기쁨의 감정이 더 컸다. 아직도 마스크를 꼭 해야 하고, 짧은 머리에 치마 입은 인영이를 이상한 듯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 눈빛때문에 약간의 서글픔도 있지만, 우리 네 가족이 다시 놀이공원에 와서 웃을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그렇게 울던 아빠는 카페 한구석에서 인영이와 함께 두 시간동안 자며 전날 숙취를 풀었다. 그동안 윤영이는 엄마를 독차지하며 행복해했다.
에버랜드 갔다 온 다음날인 토요일, ‘아빠의 인생도 있다’고 되뇌며 백만년 만에 야구를 하러 나가려다 인영이에게 붙잡혔다. 아이들 스파게티를 해주고 2번의 설거지를 하고 인영이 말 몇 번 태워주니 하루가 그냥 갔다. 팀은 졌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창피한 과거지만 신혼 초 아내가 야구를 못 가게 한다고 하루 동안 가출한 적이 있었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떠올랐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