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싸우지 말자” 축제같던 시위, 더 강렬했다

입력 2016-11-06 16:43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몰린 촛불의 분노는 강력했지만 집회는 축제와 같았다. 이번 촛불 집회에 주최 측은 당초 10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종 20만명(경찰 추산 4만5000명)이 모일 정도로 시민들의 분노는 컸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단위 시민부터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평소 집회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60대 이상 장년층이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구호는 강렬했지만, 이들은 경찰과 충돌을 피하는 등 평화적인 집회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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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끌고, 부모 손잡고 가족나들이 시위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는 오후 2시 고(故) 백남기 농민 영결식을 시작으로 사실상 시작했다. 오후 4시 공식적인 촛불 집회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면서 본격화됐다. 이들은 손에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하야하라 박근혜’ 피켓을 들고 “박근혜 하야하라”,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구호 외치는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오후 5시까지만 하더라도 주최 측 추산 5만명이던 집회 인원은 6시 12만명, 7시 20만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모인 인원이 13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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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는 말 그대로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모였다. 그만큼 분노는 전 국민적이었다. 가족 단위 시민들이 특히 많이 참가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왔다는 유석재(39)씨는 아내와 함께 네 살짜리 아들을 유모차에 끌고 구호를 외쳤다. 유씨는 “아이가 앞으로 살아야 할 나라가 이런 수준이라는 게 부끄러워서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산다는 임모(42)씨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나왔다. 그는 “지난주 집회를 텔레비전으로 보던 아들이 ‘왜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느냐’고 물어 그것에 대해 설명하다가 아들도 나가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나오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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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교복을 입고 나온 중·고등학생의 모습도 다수 보였다. 마포구에 사는 고등학생 1학년 김모(16·여)양은 “요즘엔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최순실 얘기를 많이 한다”며 “너무 화가 나 친구 2명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정유라 소환’을 외치는 학생도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60대 이상 장년층들도 집회에 참여해 “우리가 투표를 잘못했다”, “박근혜 물러나라” 외치기도 했다.

“경찰과 싸우지 말자” 성숙한 시민의식

당초 경찰은 주최 측이 신고한 도로 행진을 금지한다고 통고했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에 ‘금지통고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집회 시작 직전인 오후 4시쯤 집회 주최 측이 신고한 행진 코스 2곳 중 1곳(광화문우체국→세종대로→을지로→종로→일민미술관) 행진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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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주최 측과 시민들은 오후 5시45분쯤 허용된 경로로 행진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행렬 선두에 있는 일부 시민들이 경찰을 미는 모습을 보이자 다수의 시민들은 “경찰은 죄가 없습니다. 경찰과 싸우지 맙시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220개 중대 1만 7600여명을 집회 장소 인근에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경찰들도 길을 막고 있다가 시민들이 많이 모이면 길을 열어줘 충돌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행진 길을 열어줄 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박수치는 모습도 보였다. 시민들은 예정된 경로를 다 돌지 않고 을지로3가에서 명동으로 바로 진입해 시청을 거쳐 다시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집회는 오후 11시쯤 공식 종료됐다.

다만 집회 중에 시민과 보수단체 사이의 몸싸움이 있었다.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58·여)가 광화문 교보빌딩 옆에서 ‘불법 집회 OUT’을 외치며 집회 반대 시위를 하던 중 오후 5시30분쯤 집회 참가 학생 A씨(16·여)을 때렸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또 노숙인 이모(61)씨는 흉기를 휘두르며 집회행진을 가로막은 혐의로 연행됐다.

이날 촛불 집회는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부산과 대구에선 각각 3000여명, 광주에선 5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 퇴진’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대회와 거리행진을 벌였다.

일주일 뒤인 오는 12일에는 광화문에서 15만명 규모의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윤성민 기자, 대구·광주·부산=조원일 장선욱 윤봉학 기자 woody@kmib.co.kr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