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국현)는 이날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등 시민단체가 서울지방경찰청의 행진 금지 처분을 정지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교통 불편이 예상되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함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며 “행진 금지통고 처분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교통 소통의 공익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함보다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금지통고 처분으로 집회·시위가 금지될 경우 불법 집회·시위로 보여 여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명의로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와 거리행진을 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이 계획한 행진 경로는 광화문우체국~종로2가~재동로터리~안국로터리~종로1가~교보문고, 광화문우체국~종로3가~을지로3가~시청~대한문~일민미술관 등이었다.
경찰은 전날 “교통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며 행진 금지 처분을 내렸다. 행진 경로에 포함된 세종대로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주요 도로’로 지정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집회시위법 12조는 교통 소통과 질서 유지를 위해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시민단체들은 집회·시위로 인한 교통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300명의 질서 유지인을 배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일주일 전에도 유사한 성격의 집회·시위를 개최했으나 교통 불편 등으로 인한 큰 혼란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도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과 질서 유지의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5일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집회도 폭력 집회 가능성을 들어 금지했다가 이번처럼 법원에서 효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폭력이 발생한) 1차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차 집회를 주도한다고 반드시 과격해진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집회는 경찰이 개최 하루 전인 4일 오후 주최 측에 금지통고를 하면서 전처럼 소송으로 처분을 무력화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경찰이 이를 노리고 집회일에 임박해 금지통고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회 주최 측이 법원에서 효력 정지 결정을 받아낼 시간이 없도록 머리를 쓴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집회 신고가 3일 오후에 접수됐고 이후 주최 측과 질서유지인을 늘리거나 행진 경로를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라며 "우리가 소송 자체를 막으려 했다면 집회 당일 아침에 금지통고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법원은 시민단체가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집회 시작 2시간 전인 이날 오후 2시 심문을 진행해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가처분 신청을 대리한 참여연대는 “경찰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도심에서의 대규모 집회에 대해 교통 소통을 이유로 자의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해왔던 관행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