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의 삶과 사랑, 연극과 뮤지컬로 깨어나다

입력 2016-11-02 21:06 수정 2016-11-03 10:59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소재로 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백석(1912~1996).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그는 식민지 조선 최고의 모던 보이였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그는 영어와 러시아어에도 능통했지만 그의 시는 누구보다 토속적이고 향토적이었다. 1936년 발표된 시집 ‘사슴’은 정감있는 평안도 사투리와 특유의 맑은 서정 그리고 모던한 표현감각으로 그를 최고의 시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야말로 굴곡진 한국사의 축소판이었다. 신문기자와 교사, 번역가로 활동했던 그는 일제 시대 친일을 거부하기 위해 절필하고 만주로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엔 고향에 남는 바람에서 남한에선 월북시인이란 딱지가 붙어 외면받았고, 북한에선 사상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집단농장으로 내쳐졌다.
미남에다 낭만적인 그는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스쳐간 애틋한 사랑은 시의 자양분이 됐다. 특히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운데 나타샤가 누구인지에 대해 연구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1988년 납북·월북 작가의 해금 이후 백석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은 작가는 없다. 백석에 대한 논문만 무려 800여편이 나왔을 정도다. 최근 공연계에서도 백석의 삶을 다룬 작품이 2편 나와 화제를 모은 바 있고, 오는 11월 나란히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5일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2017년 1월 22일까지)는 백석과 기생 자야의 사랑을 소재로 했다. 본명이 김영한인 자야는 3공화국 시절 권력 실세들이 애용했던 요정인 대원각의 주인으로 1987년 1000억원대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백석과의 사랑을 담은 에세이에서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했다. 

 뮤지컬은 그가 죽기 전 평생 사랑했던 백석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월 우란문화재단 시야 스튜디오에서 가진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박해림이 대본과 가사, 채한울이 작곡과 가사, 오세혁이 연출을 담당했다. 이번 공연에서 백석 역에는 강필석·오종혁·이상이, 자야 역에는 정인지·최연우가 캐스팅 됐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백석우화'

 30일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새로운 극장인 30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백석우화’(12월 18일까지 매주 금·토·일요일)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백석의 삶을 그린 음악극이다.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이 작품에서도 초반에 나타샤의 정체를 놓고 논쟁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세간에서는 기생 자야로 알려져 있지만 연극에선 백석의 첫사랑이지만 친구의 아내가 된 ‘란이’와 동시대 여성작가인 시인 노천명, 소설가 최정희가 함께 거론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해방 이후 백석의 모습이다. 백석은 북한에서 초기엔 대접을 받지만 순수한 그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은 사상성을 의심받아 가족과 함께 삼수갑산 집단농장으로 유배당했다. 30년간 삼수갑산에서 지낸 그는 남북한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다. 극중에서 그가 매일 시를 쓴 뒤 바로 불쏘시개로 태우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을 받았고, 백석 역의 오동식은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을 받은 바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