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할아버지도… 남녀구분 사라진 ‘황혼 알바’

입력 2016-11-03 00:05

박모(67)씨는 지난 7월부터 4개월째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에서 헬스장 전단지를 나눠주는 ‘황혼 아르바이트생’이다. 평일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정해진 시간에 따라 하루 8시간을 일하고선 8만원을 받는다. 시간 당 200여장을 나눠주려면 살가운 미소를 잊지 말아야 하는 건 필수다. 주말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 없어 평소 부지런히 일해야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

박씨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단지 팀’은 모두 8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은 남자다. 박씨는 처음 전단지 일을 제안 받았을 때 거절하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고령 남성이 전단지를 돌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걱정됐다. 하지만 당장 생활비를 벌기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박씨는 “‘남자는 경비일, 여자는 전단지나 식당일’이라고 하는 건 옛말”이라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황혼 아르바이트에 나선 고령 남성들이 전단지 배포와 식당일까지도 도맡아 하고 있다. 주로 여성들이 하는 업종이라며 외면했던 과거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노인빈곤 문제가 계속되면서 고령 남성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종에 상관없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황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지원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 알바몬은 2일 50대 이상 아르바이트 지원자 수가 2014년 20만2687명에서 지난해 33만5182명, 올해 45만955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고 밝혔다. 2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잡코리아가 지난달 14일 성인남녀 10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정년 이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다’고 대답한 비중은 82.1%에 달했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 호불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은 황혼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음식점 서빙과 전단지 배포 등 일부 업종은 꺼리는 걸로 드러났다. 응답자 28%는 ‘음식점서빙 및 주방보조를, 19.4%는 고객센터 텔레마케터, 18%는 전단지 배포를 아르바이트로 하기 싫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막상 고령 남성들이 텔레마케터나 결혼 도우미 등 여성이 주로 하던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경우는 늘고 있다. 알바몬이 2014년부터 올해까지 연도별 1~3분기 기준 아르바이트 지원자수를 조사한 결과 50대 이상 남성이 텔레마케팅을 지원한 비율은 16%에서 24%로 뛰었다. 결혼 및 연회 도우미에 지원한 비율도 36%에서 42%까지 올랐다. 정의헌 노후희망유니온 공동위원장은 “고령 남성들이 예전에는 손사래 치던 일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며 “부양할 가족은 있는데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55세 이상이 손님들의 식사 정리를 돕거나 매장 안내 등을 맡는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에도 남성 비중이 적잖다. 시니어 크루에서 남성 비중은 2014년 46%, 지난해 47%로 절반에 이른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비율을 따로 정해놓지 않아도 매년 남성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며 “남성 시니어 크루들이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다가도 금방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고령 남성이 과거 꺼리던 업종에까지 뛰어드는 건 노인 빈곤 사회의 단면이라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5일(현지시각)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상 2016(Society at a Glance 2016)’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비율을 뜻하는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약 49%로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65세 이상 노인 절반 가까이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노인 빈곤층은 기본적인 생계도 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고령 남성의 경우는 정도가 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 고령층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