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던 차은택, 어떻게 ‘최순실의 남자’ 됐나

입력 2016-11-02 16:31 수정 2016-11-02 20:45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곧 중국에서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는다. 최순실(60·최서원에서 개명)씨의 체육사업 중심에 K스포츠재단과 국가대표 펜싱선수 출신 고영태(40)씨가 있었다면, 미르재단으로 대표되는 문화사업에선 차씨가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주변 인물들은 낯을 가리던 차씨가 어떻게 국정농단의 2인자로 거론되는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순실-차은택 ‘문어발 법인들’

차씨가 2001년부터 운영해 온 영상물 제작업체 아프리카픽쳐스는 광고기획·영화 수출입을 하는 업체인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전 모스코스)에 직원들을 파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2월 설립된 이 업체에서는 차씨와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김홍탁(55)씨와 김성현(43)씨가 연이어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 업체는 미르재단이 설립된 직후인 지난해 10월 말 청산됐다. 김성현씨는 이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으로 일했다.

김성현씨는 이에 앞서 지난해 4월까지 존앤룩씨앤씨라는 법인의 사내이사로 일하기도 했다. 광고기획·커피숍·전시기획·무역업 등 다양한 사업목적을 가진 이 법인은 ‘비선실세’ 최씨의 아지트로 알려진 서울 논현동 ‘테스타 로싸’를 운영했다. 최씨는 이곳에서 차씨를 포함한 측근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고, 스포츠마케팅업체 더블루케이를 운영할 임원을 면접하기도 했다.

김성현씨를 매개하지 않고서도 차씨와 최씨 사이의 연결고리는 다양하다.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의 사내이사 소모(41)씨는 다른 광고업체 코어플랜의 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사실상 유령회사인 코어플랜의 대표이사는 최씨와 깊이 관계돼 있고, 최근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고씨다. 고씨는 최씨와 함께 고원기획이라는 법인을 차리기도 했는데, 이곳에는 차씨가 아예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차씨와 관련된 업체 상당수는 정부의 일감을 따내 진행했고, 줄줄이 검찰 압수수색을 받고 있다.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는 대통령이 임기 후반 3년간 국민 1000명을 만나 소통한다는 계획을 담은 ‘천인보’ 기획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억여원을 들여 만들었던 ‘늘품체조’도 차씨의 작품으로 드러났는데, 영상물 제작 용역은 엔박스에디트라는 업체가 맡았다. 이 업체와 아프리카픽쳐스에는 최모(47)씨가 각각 전·현직 감사로 등재됐다.

고졸 감독이 ‘비선’에 얽히기까지

엔박스에디트와 법인등기부 주소를 공유하는 머큐리포스트는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대표로 있던 곳이다. 그는 차씨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이미 아프리카픽쳐스를 비롯한 차씨의 관계법인 다수를 상대로 강제수사를 벌여온 검찰은 2일 전남 나주 한국콘텐츠진흥원 사무실, 그리고 송 전 원장 등 3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차씨가 송 전 원장을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후임으로 앉히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후 송 전 원장이 한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고, 조윤선 문체부장관이 “최대한 연락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국정감사장에서 답변하기도 했다. 송 전 원장이 대표로 있던 머큐리포스트가 한국관광공사의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전시 영상용역을 따낸 시공테크로부터 5억원 상당의 일감을 받은 사실도 국회에서 폭로됐다.

복잡하고 치밀하게 얽힌 이 모든 일은 최근 2년 사이에 일어났다. 차씨의 지인들은 그가 그저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고 기억한다. 외향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도 일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럴 뿐, 실제로는 예민하고 일만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마당발이 아니던 차씨가 어떻게 정치권과 연결됐을지 정확한 배경을 짐작하는 인사들은 드물다. 차씨와 가까운 거리에서 10년쯤 일한 한 인사는 “광고대행업을 하다 보면 선거 기간 정치인들의 연락을 받긴 하지만, 광고감독으로서는 이례적 사례”라고 말했다. 차씨와 함께 일했다는 다른 인사도 “차씨가 발이 넓다고 하는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다. 차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그가 정치권 및 관료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는 증언도 있었다. 학력 콤플렉스가 정치권에 줄을 댄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차씨는 ‘고졸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다.

이경원 오주환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