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 일곱 살이 넘으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않음을 강조하는 유교 사상이 담긴 말이다. 구한말 복음이 뿌리내리는 동안 우리나라엔 유교적 전통에 따라 예배당 안에 칸막이를 두거나 휘장을 둘러 남녀 성도가 따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빛과진리교회(김명진 목사)의 주일 예배 현장에서 기독교 선교 역사의 빛바랜 사진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찬양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 안으로 성도들이 밀물처럼 입장했다. 한데 예배당에 함께 들어 온 남녀 성도들이 인사를 나눈 뒤 자연스럽게 서로의 자리를 찾아 따로 앉는 것이었다. 잠시 후 1000여석을 가득 메운 예배당엔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두고 좌우로 갈라 앉은 듯한 남녀 성도들이 강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펼쳐지는 이 교회의 예배 모습이다.
빛과진리교회는 출석성도의 약 85%가 청년인 말 그대로 피 끓는 청춘들의 공동체다. ‘자유분방함’ ‘개방적 사고’로 대변되는 청년들이 모인 공간에서 어떻게 이런 예배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김명진(55) 목사는 “1980년대 초 출석하던 교회의 청년 회장을 맡았던 당시 교회 내 이성관계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개척할 때부터 ‘성경적인 이성관계 정립’을 강조했는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남녀 성도들이 나눠진 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교회에선 성경공부, 셀모임 등 소그룹 활동에서도 남녀가 함께인 모습을 볼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만큼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는데 집중하고 신앙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더 진솔하게 공유해나가기 위해서다.
모태신앙인 이보영(32)씨는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선 ‘좋아하는 교회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설교에 집중하고 자매들과 신앙적인 고민, 삶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나누면서 스스로를 계발해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웃었다.
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처음 신앙을 갖게 된 황장훈(26)씨는 “비기독교인 친구들과 이성관계에 대한 고민을 나눌 때는 비성경적이고 문란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오히려 고민이 늘었는데 교회 형제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보니 성경적인 해법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녀가 구분된 공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이성 관계 자체를 멀리하게 만들지는 않을까’싶었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미 교회 안에는 20~30대 청년 150여 커플이 가정을 이뤘다. 대부분 이 교회의 성경적 이성교제 훈련 프로그램인 ‘거룩한 만남’을 통해 인연을 찾은 케이스다. 8개월째 연애하고 있는 김진욱(29)·문용주(33·여) 커플은 “성경적 가치관이 훈련된 상태에서 이성을 바라보다보니 ‘스킨십 문제’ ‘혼전 순결’ 등 또래 연인들이 흔히 하는 세상적인 고민들을 접어둘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 목사는 “과거에는 교회가 ‘건전한 사귐의 공간’이란 인식을 심어 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혼전 순결’을 얘기하면 괴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온라인편집=조경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