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 부족한 해외 체크카드로 국내에서 10억원 꿀꺽

입력 2016-10-31 17:40
잔고가 부족한 외국 계좌의 체크카드로 국내 금융기관에서 10억원에 달하는 돈을 빼돌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외국에서 만든 계좌는 잔고가 부족해 체크카드 사용이 정지돼도 5∼7일이 지나면 제한이 풀려 다시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신종 사기 ‘카이팅(Kiting)'이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류모(43)씨 등 4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가맹점주 정모(33)씨 등 1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외국으로 달아난 팀장급 김모(38)씨는 지명수배했다.

 류씨 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도권과 영남권 지역 소재 법인 10곳과 카드발급자 10명을 모집한 뒤 미국과 뉴질랜드 등 외국 은행 6곳에 예금계좌를 열고 체크카드 20장을 발급받았다. 이들은 이 카드로 3~4배에 달하는 허위 매출전표를 발행해 국내 금융기관 3곳으로부터 총 353차례에 걸쳐 9억6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내와 해외 은행의 체크카드 지급정지 기간이 다른 점을 노렸다. 은행은 보통 고객이 체크카드로 결제한 액수만큼 지급정지를 설정해 카드대금이 계좌 잔고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자동 조치한다. 국내의 경우 카드 가맹점에서 매출전표를 제출할 때까지 30일 동안 지급정지 기간을 유지한다. 그러나 해외 은행은 매출전표가 5~7일 내에 접수되지 않으면 이 지급정지를 자동 해제한다.

 일당은 국내 금융기관은 외국 체크카드의 국내 거래에 대해서는 계좌 잔고와 상관없이 가맹점에 대금을 우선 지급하고 이후 외국 은행·카드사와 정산하는 방식으로 업무해온 점도 악용했다.

 류씨 등은 이런 허점을 이용해 미리 섭외한 가맹점에서 잔고 2500만원짜리 해외 체크카드를 한번에 총액만큼 결제한 뒤 전표를 보관했다. 그러다 5~7일 후 지급정지가 풀리고 잔고가 돌아오면 또 결제하는 식으로 한 달 동안 4차례에 걸쳐 1억원어치 허위 매출전표를 만든 뒤 이를 국내 은행에 제출해 대금을 받아챙겼다.

 경찰은 “‘특정 해외 체크카드로 수억원의 대금이 반복적으로 청구된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시작했다”며 “사기 수법 전수 경위를 역추적하고 추가 피해내역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