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번 슬럼프 와요”… 이준, 그는 배우다 [인터뷰]

입력 2016-10-30 20:30 수정 2016-10-30 20:34
프레인TPC 제공

배우 이준(본명 이창선·28)은 욕심쟁이다. 연기 욕심이 끝도 없다. 충분한 것 같은데 자꾸만 부족하단다. 끙끙 끌어안고 사는 고민이 한 가득이다. 지금껏 그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바로 이것임에 틀림없다.

흥행은 물론 연기력 면에서도 호평을 받은 영화 ‘럭키’를 두고도 이준은 “100%를 채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 들어 신기하고 감사하다”며 “(박스오피스) 숫자를 볼 때마다 ‘이렇게 빠를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 얼떨떨해했다.

지난 13일 개봉한 ‘럭키’는 1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코미디 장르 사상 최단기록이다. 이준의 출연작들 가운데서도 최고 스코어다. 극 중 킬러(유해진)와 뒤바뀐 삶을 살게 되는 무명배우 재성 역을 맡은 이준은 제 몫을 훌륭히 해냈다. 삶의 의욕을 잃고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의 절박함부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설렘까지 폭넓게 표현했다.

“촬영 전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안 좋게 비춰질 수 있는 캐릭터잖아요. 처음부터 자살 시도를 하고 그 다음부터는 도둑놈이고(웃음). 제일 중점을 둔 건 이 사람이 진짜 나빠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한 것 같아요.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던데, 다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는 정말 목숨을 걸고 임했거든요.”

이준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일부러 근육을 뺐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왜소해진 몸을 표현하기 위해 복근마저 없애버렸다. 앞서 유해진은 이런 이준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자극을 받았다고 했었다. 연기에 대한 애착과 고집, 열정이 느껴졌다면서.

정작 이준은 “이 이상 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다이어트를) 했는데 화면으로 보니 어쩔 수 없는 (근육) 선이 보이더라”며 아쉬워했다.

영화 '럭키' 스틸컷. 쇼박스 제공

평소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늘만 잘 넘기자’는 생각으로 산다는 그이지만 연기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이준은 “연기에 대해서는 많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편”이라며 “슬럼프도 굉장히 많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슬럼프가 온다. 멘탈이 강해지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 털어놨다.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대본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인간미 넘치는 변호사 마석우 역으로 출연 중인 그는 직업 전문성을 살리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공부하기도 하는데… 제가 실제 변호사가 아니다보니까… 100% 이해를 못해서 참 힘든 것 같아요.” 정녕 과한 욕심이 아닌가.

그룹 엠블랙 멤버로 데뷔한 이준은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2009)을 계기로 연기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연극영화과 진학을 원했으나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을 전공하게 됐다. 꽤나 재능이 있었지만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우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는 아직 그를 괴롭힌다. “창피해서, 진짜 처음 말하는 건데…. 사실 경희대 연영과 시험을 봤다 떨어졌었어요. 그때 ‘나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지금도) 연영과 출신을 보면 괜히 주눅 들고 그런 게 있어요. ‘무용하고 가수 하던 사람이 무슨 연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두려움이 많아요.”

영화 '럭키' 스틸컷. 쇼박스 제공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준이 가장 오래한 건 연기다. ‘배우는 배우다’(2013) ‘갑동이’(tvN·2014) 등 작품을 통해 아이돌스럽지 않은 연기 내공을 보여줬다. 실력 있는 ‘연기돌’로 평가 받던 2014년 10월, 그는 엠블랙에서 탈퇴하고 연기에 ‘올인’했다.

“탈퇴를 했다고 해서 엄청나게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하던 거, 잘 할 수 있는 걸 계속 한 거죠. 가수 활동하면서 연기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봐도 마음가짐은 똑같은 것 같아요. 크게 다른 건 못 느끼겠어요.”

아이돌 출신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이준은 “지금까지의 제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돌 이미지를) 굳이 깨야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배우로 완전 전향한 이후 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가수 활동을 병행했을 때에는 잠 잘 시간조차 없어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 스틸컷. MBC 제공

“특히 ‘배우는 배우다’ 찍을 때는 잠을 아예 못 잤어요. MBC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는데 행사에, 연습에, ‘우결’ 외의 예능에도 나갔어요. 뭔가 스케줄이 많은 상태였죠. (영화를) 리허설 없이 찍은 적도 많아요. 제가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일단 빨리 해봐. 액션!’ 하고 들어간 적도 있고요. 그때 정말 스태프들께 죄송했어요.”

이준은 “그때는 내가 정신을 안 차리면 진짜 죽을 것 같았다”면서 “너무 잠을 못자니까 미치겠더라. 의식적으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연기 욕심은 넘치지만 다행스럽게도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힘들잖아요. 허허. 일하면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했다. “(연기) 호평을 받으면 날아다녀요.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잘 봤다’는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기쁘죠.”

배우로 살아가면서 조바심을 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준은 “그냥 천천히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며 “굵고 긴 것보다 가늘더라도 긴 게 나을 것 같다”고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