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사회학과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2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야반도주하듯 미국 이민을 갔다. LA아트센터 칼리지에 입학하기 전 듣던 ESL과정(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육)에서 교사는 수업 교재로 읽히던 미국 이야기속 주인공을 이민 온 학생들의 영어 이름으로 삼았다. 그는 서부 개척 시대의 유명한 버팔로 사냥꾼 코디에 관한 스토리를 읽었다. “학생은 이름을 코디로 하는 게 어때?” 최현주는 그렇게 코디 최(55)가 됐다. 지금도 예명으로 쓴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또 2004년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마찬가지로 느끼는 문화적 정체성 혼란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코디 최는 그의 예술적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인 것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코디 최 개인전 ‘채색화: 아름다운 혼란'이 열리고 있다. 2011년 이후 5년 만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가 주목받는 건 코디 최가 이완(37) 작가와 함께 내년의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갤러리 측은 “한국관 출품작 제작 기금 마련 전시”라고 표방했다.
작품들에서 팔리기 쉬운 ‘상업적 개념미술’의 냄새가 언뜻 풍기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회화 작품으로 개인전을 여는 건 199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개념미술은 미술의 상업화에 반기를 들고 1960년대 출현했다. 그는 개념미술 작가 밑에서 미술수업을 시작한 이래 개념미술을 해 왔다.
전시장에 나온 80호, 100호 크기의 캔버스에는 ‘VIOLET’(보라), RED(빨강) 등 색을 나타내는 영어 철자들이 겹쳐져 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보라를 뜻하는 철자가 흰색, 노랑색 등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이다. 빨강, 회색을 뜻하는 다른 영어 철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민 생활의 경험에 따른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진지하게 다루는 주제다. 그 근저를 파고드니 이성과 감성의 혼란이 있더라”고 말했다. 이성적 기능을 수행하는 좌뇌와 감성적 기능의 우뇌를 교란시킴으로써 시각 예술로서의 회화와 이성적인 미술인 개념미술 간의 혼란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넘게 미술계의 주류로 이어져오던 개념미술은 근래 들어 시들해졌고, 회화의 손맛이 강조되는 흐름도 나타난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시장의 흐름에 맞춘 것은 아니다. 개념미술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렇다면 시각예술은 뭔가, 그런 상호충돌을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구상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여러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베네치안 랩소디’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예술과 관광을 연계한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술 이벤트라 해석하고 풍자하는 설치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베니스도 (도박도시인) 라스베가스, 마카오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진정한 미술은 거기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권력과 자본을 갖고 있기에 권위를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형 형식으로는 라스베가스, 마카오의 현란하면서도 공허한 간판을 따 재구성한 설치물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대학교(NYU), 한국의 홍익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오면서 학생들에게 “비엔날레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런 곳에 나갔다왔다고 폼 잡지 말라는 얘기를 수 천 번 해왔다”는 그다. 그런 그가 정작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자신에게 마당을 깔아준 베니스비엔날레의 심장부에서 엎어컷을 날리겠단다. 그 수위가 궁금하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