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최고의 무대는 포스트시즌이다. 가을야구에 초대받은 팀들은 한 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가장 응집된 전력으로 경기에 나선다. 그런데 올 시즌 포스트시즌은 그렇지 못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가 치러졌지만 갈수록 경기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순위가 높은 팀들끼리 맞붙는 경기가 응당 내용면에서 좋을 것으로 평가됐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오히려 4, 5위 팀인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가 맞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내용면에서 더욱 좋았다는 평가다.
반면 넥센 히어로즈와 LG가 만난 준플레이오프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때보다 경기의 질이 떨어졌다. 1차전에서 넥센은 0대 7로 패했다. 그런데 11안타 무득점이었다.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무득점 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결국 넥센은 한 수 위라는 전력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무너지며 1승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NC 다이노스와 LG의 플레이오프도 마찬가지다. LG는 1차전에서 3안타, 2차전에서 4안타 등 2경기에서 총 7안타라는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당연히 두 경기 모두 NC에 내줬다. 양팀은 3차전에선 역대 포스트시즌 최악의 졸전을 선보였다. 사사구와 잔루가 점철된 믿을 수 없는 경기가 나왔다. NC는 나오는 투수마다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남발했다. NC는 13개의 볼넷을 허용해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볼넷 신기록을 세웠다. 사사구는 모두 16개를 허용해 이 역시 신기록을 작성했다. LG도 사사구 9개를 허용해 양 팀 통틀어 무려 25개의 사사구가 나왔다. 한 경기 최다 사사구 속에서 최다 볼넷(19개) 기록도 새로 나왔다.
당연히 이러면 LG가 쉽게 경기를 가져가는 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LG는 거짓말처럼 연이어 득점에 실패했다. 무려 7번이나 만루 찬스를 만들었는데 단 1점에 그쳤다. LG는 19개의 잔루를 기록했는데 한 팀 최다 잔루 신기록을 세웠다. 양팀 합쳐서도 한 경기 최다 잔루 신기록(33개)이 만들어졌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포스트시즌이라는 중압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 번 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극도로 움츠러든다. 특히 신인들은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3차전 NC 선발 장현식은 사상 첫 가을야구 무대에 나왔지만 1이닝 5볼넷 1실점으로 무너졌다. 그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베테랑도 마찬가지다. LG 간판 박용택은 플레이오프에서 12타수 무안타 6삼진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내고 있다.
외국 선수에 편중된 선발 라인업과 선수 부족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가을야구에 올라온 대부분의 구단이 외국인 선수 원투 펀치를 제외하고는 토종 선발이 부실하다. NC는 에릭 헤커와 재크 스튜어트, LG는 헨리 소사와 데이비드 허프 빼고는 믿고 맡길 투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선수까지 부족하다. NC가 3차전 선발로 신예 장현식을 내세운 것도 이재학이 승부조작 여파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자구책으로 마련된 것이다.
반면 이미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두산 베어스는 선수층이 두껍다. 15승 이상 거둔 토종 투수가 두 명이다. 플레이오프 승자는 이런 선수 부족을 메울 감독의 용병술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