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대법원이 새로 마련한 위자료 산정방안의 특징은 비난 가능성과 예방 필요성에 따라 기존 지급액 범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징벌적’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고의적 범죄, 사회통념상 인정이 어려운 위법이 결합된 경우 과실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구체적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새 산정방안의 상한을 초과한 위자료도 지급 가능하다.
그간 우리 법원은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는 재산적 손해 액수와 같이 증거에 의해 입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 할 것이므로 법원은 그 직권에 의하여 이를 산정할 것이고 이에 관해 하등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라왔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수학적으로 명쾌히 산출되지 않으며, 위자료는 법원이 직권으로 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유형별로 축적된 하급심의 판례들이 통상의 위자료 수준·범위를 안내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법원의 관행은 많은 현실적 비판에 부딪히기도 했다. 유사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위자료가 일관적이지 않으며, 법원에 따라서도 액수의 편차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인신손해(人身損害) 시 노동능력상실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취미, 성생활 심지어 외모에 주는 영향까지도 고려한다는 비교법적 비판도 컸다.
우리나라의 위자료 수준이 비슷한 경제규모를 갖춘 다른 나라들보다 낮게 산정됐다는 비판도 꾸준했다. 법학계에서는 “국민총소득 대비 사지마비 위자료 수준을 계산하면 미국은 한국의 37배”라는 연구 결과가 자주 인용돼 왔다. 고도의 상해, 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액을 산정할 때 구간이 다른 나라보다 좁다는 비판도 많았다. 서울중앙지법이 2008년까지 8000만원이던 사망사고 위자료 기준금액을 지난해 1억원으로 높였지만, ‘국민정서법’ 상으론 여전히 부족한 액수였다.
법원 역시 꾸준히 제기돼온 위자료 현실화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의 조속한 마련이 절실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예방과 억제의 필요성이 큰 경우 특별가중인자를 적용하겠다면서 새로운 위자료 산정기준을 ‘적정한 것’으로 표현했다.
교통사고의 경우 가해자의 도주, 음주·난폭운전 등이 특별가중인자가 된다. 이러한 과실은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크고, 교통법규 준수를 신뢰한 피해자·유족의 정신적 고통도 크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세월호 참사 등 대형재난사고가 잦아지는 사회적 현실도 새 방안 마련에 반영됐다.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 등으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특히 시신 수습이 어려운 때가 많아 정신적 고통이 가중된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검찰 수사로 다시 주목받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둘러싸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시사하는 설명도 있었다. 대법원은 “사회 일반에 생활필수품 등 재화와 용역의 인체에 대한 안전성과 무해성 등에 관한 불신과 공포·불안을 야기”한 경우 적정한 위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00만원 미만의 위자료만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던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중대한 상해에 못지않게 매우 큰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지마비’ 위자료… 한국, 미국의 37분에 1 불과
입력 2016-10-24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