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축구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75) 경은 27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이끌며 모두 38개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맨유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2013년 7월 그가 은퇴한 후 3명의 감독(데이비드 모예스·루이스 판 할·조세 무리뉴)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들은 이 문화를 내팽개쳤다. 특히 현 감독인 무리뉴는 아예 등을 돌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4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탠퍼드 브릿지에서 열린 맨유와 첼시의 2016-2017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경기. 맨유는 0대 4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경기 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다비드 데 헤아 등은 웃으며 첼시 선수들과 유니폼을 교환했다.
약 30년 동안 선수로서, 코치로서 퍼거슨 경의 페르소나(분신) 역할을 했던 라이언 긱스는 영국 일간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대패해놓고 (맨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은 매우 불편했다”고 꼬집었다. 맨유는 4승2무3패(승점 14)를 기록하며 7위에 머물렀다. 지난 시즌보다 못한 성적이다. 맨유는 지난 시즌 판 할 체제에서 9라운드까지 6승1무2패(승점 19점)를 기록했다.
지난 3시즌 동안 맨유는 리그에서 7위, 4위, 5위에 그쳤다. 맨유 수뇌부는 우승 조급증에 걸려 연이어 악수(惡手)를 뒀다. 눈 앞의 성적에만 집착해 이름값으로 감독을 선임했다. 모예스나 판 할, 무리뉴가 다 그런 부류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전략을 세운 뒤 선수를 키워내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되레 클럽 재정만 축내는 몸값 비싼 선수만 사오는데 혈안이었다. 그것도 전도유망하기보다는 이미 한물 간 선수로 말이다.
퍼거슨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다. 그리고 선수의 가족까지 품었다. 유스팀도 애지중지했다. 13살때까지 토트넘 유스팀 소속이던 데이비드 베컴을 점 찍은 그는 베컴 부모에게 꾸준하게 맨유 행을 권했다. 베컴이 경기할 때면 일부러 시간을 내 보러 갔다. 부모가 베컴을 토트넘 1군 감독에게 데려갔을 때 그 감독은 베컴이 누군지조차 몰랐다. 실망한 부모는 바로 베컴을 맨유에 보냈다. 퍼거슨은 베컴에 관한 모든 기록과 사실을 서류 한뭉치로 다 가지고 있었다. 생일을 맞은 베컴을 위해 케이크까지 준비해뒀다.
1996년 여름 퍼거슨은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블랙번에 리그 우승컵을 내준 뒤 팀의 핵심이던 마크 휴즈, 폴 인스, 안드레이 칸첼스키스를 전부 방출해버렸다. 그리고 유스팀에서 막 성인팀에 접어든 베컴과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을 주전으로 발탁했다. 당시 언론은 “이 꼬마들로는 아무 대회도 우승 못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들은 ‘퍼기의 아이들’로 불리며 황금세대를 이뤘고, 1999년 3관왕을 달성했다.
지금의 감독 무리뉴는 이와 정반대다. 클럽 유스팀 출신 선수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미 첼시,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치며 유스팀 출신은 단 한 명도 1군 주전으로 키우지 않았다.
퍼거슨은 용병도 현재의 성적보다 잠재력에 더 주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박지성(은퇴)이 대표적이다. 둘 다 무명때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다가 결정적 순간에 스카웃해 세계적인 선수로 길러냈다.
무리뉴는 슈퍼스타 수집에만 열을 올린다. 35살로 이미 전성기를 지난 즐라탄 이브라모비치, 퍼거슨이 버린 폴 포그바가 그렇다. 이들은 골 넣는 것도 지지부진하지만, 팀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퍼거슨은 항상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며 조직력을 강조했다. 또 선수들에게 맨유 유니폼을 입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투혼으로 이어졌다. 반면 무리뉴는 선수들에게 과도한 요구만 한다. 때문에 선수들의 신뢰만 잃어버리고 있다.
맨유는 이제라도 퍼거슨 경이 이뤄 놓은 팀 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구보다 맨유를 잘 알고 있고, 충성심도 높은 웨인 루니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