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와 속옷(?)도 주고받는 컵스표 ‘팀 스피릿’

입력 2016-10-25 00:04
(왼쪽부터)시카고 컵스의 앤서니 리조, 크리스 브라이언트, 맷 시저. 앤서니 리조 트위터 캡처

71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시카고 컵스의 원동력 중 하나로 ‘팀 스피릿’이 지목되고 있다. 팀 동료들의 타격감 회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배트와 속옷을 빌려준 외야수 맷 시저(27)는 ‘숨은 MVP’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저는 이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컵스의 25인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팀 동료들이 그라운드에 나서는 모습을 더그아웃에서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경기에 출전할 순 없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동료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열띤 응원을 펼쳤고, 현지 중계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컵스 타자들 중 일부는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시저의 배트를 빌려 타석에 들어섰다. 처음은 아니었다. 정규시즌 때도 효과를 본 선수들이 꽤 있었다.

시저의 속옷을 빌려 입은 선수도 있다. 바로 애디슨 러셀이다. 러셀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 4, 5차전 승부처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가장 큰 수혜자는 앤서니 리조였다. 리조는 자신이 사용하던 것과 같은 사이즈인 시저의 배트를 들고 타격에 나섰다. 그리고 타격감을 되찾아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리조는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NLDS)에서 15타수 1안타 타율 0.67로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NLCS에서도 2차전까지 무안타로 침묵했다. NLCS 4차전에서 시저의 방망이로 솔로 아치를 그리며 포스트시즌 8경기 만에 첫 타점을 올렸다.

이후 리조는 4차전에서 6차전까지 14타수 7안타로 부활했다. 3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마지막 6차전 때는 LA 다저스 에이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다. NLCS 동안 25타수 8안타로 제 몫을 다했다.

맷 시저. MLB닷컴 영상 캡처

시저는 더그아웃에서 리조의 부활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리조가 4차전 당시 홈런을 때린 뒤 더그아웃에 돌아오자 포옹을 나누며 동료의 활약에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보냈다. 

리조는 “정규시즌 때도 방망이를 바꿨던 경우가 있다. 이번엔 시저의 방망이가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두 선수는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뒤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다정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SNS에 공개했다. 이들이 평소에도 얼마나 절친한 동료 사이인지를 보여준다.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우승을 향한 결속력이 더해져 이룬 결과물이다. 컵스의 팀 스피릿이 월드시리즈에서도 빛을 발할지 지켜볼 일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