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후 미국 등 전세계가 강력한 대북제재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 말레이시아에선 북미간 비밀 접촉이 있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무관한 민간 대화”라고 선을 그었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말레이시아 비밀 접촉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안했을까, 양측은 어떤 의도로 접촉에 임했을까.
대북 전문가들은 형식적으로 제안은 북한이 했지만 접촉 필요성은 미국이 더 간절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진 일은 북한보다 미국이 어떤 점에서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이번 비밀 접촉이 강력한 대북제제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사드배치 방침을 발표하고 나서 중국하고 러시아가 대북제재 2270대열에서 사실상 빠져나갔다”며 “한미가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 합의했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어 “지금 미국 현 정부는 아니고 미국의 싱크탱크나 차기 정부를 구성할 그쪽 사람들은 오바마 때의 북핵 정책 가지고는 안 되겠다. 오히려 오바마 때 전략적 인내라는 북핵 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5번이나 하지 않았느냐. 그러려면 사전에 이걸 막으려면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그런 모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필요를 미국 측에서도 느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제안은 북한이 했을 것이다. 토니 남궁이니 레온 시갈이니 이런 사람들이 다리를 놨겠지만 북한에서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미국의 차기 정부를 상대로 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고 미국은 미국대로 오바마 정부가 끝난 뒤에 북핵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그런 모색을 하는 차원에서 만났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정 전 장관은 정부의 설명과 달리 이번 접촉을 “반관반민이라고 봐야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 대표들이 전부 당국자들이고 북한은 민간이 없다. 미국 측에서 나간 사람들도 그냥 단순하게 학자나 대학 교수,전문가들이 아니고 과거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전선에서 북한과 협상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또 “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든 로버트 갈루치, 그다음에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든 조지프 디트라니 이런 사람들은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가지고 있고 북한의 말을 소위 말의 숨은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해서 아마 그들이 돌아가면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반관반민의 대화가 정부간 대화로 옮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봤다. 정 전 장관은 “94년 북핵위기 때 6월달에 북핵위기 때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선생, 나중에는 대통령되셨지만 DJ의 권고를 받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며 “그때도 미국 정부에서 민간 차원에서 간 것이고 우리는 전혀 관계없다고 했지만 그가 가서 김일성을 만나서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해서 돌아오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미국에서 이 사람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접촉 시기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 하기 전에 2006년 7월 4일날 독립기념일날에 장거리미사일을 쏜 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이 아주 난장판이 됐었는데 바로 그런 걸 막고 두 번째는 북한이 지금 저렇게 준비가 돼 있다면 협상 전략 차원에서 6차 핵실험 또는 7차 핵실험까지도 갈 수 있다고 미국은 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관리를 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