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히로키(41·히로시마 도요카프)는 일본 히로시마 시민들을 사랑하는, 시민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투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시민구단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구로다에게서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20년 야구인생의 전부다.
구로다를 향한 시민들의 마음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유별났다. 구로다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처음 떠돌았던 2006년 가을 도요카프 홈구장 마쓰다 스타디움 관중석 대형 현수막에 적힌 문구는 거의 한 수의 시였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순간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리면 우리는 그 눈물이 되겠다.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가난한 시민구단. 걸출한 스타플레이어 한 명을 보유하기도 벅찬 비인기구단. 더 큰 꿈을 좇겠다는 프랜차이즈스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설움과 애절한 해후의 염원은 관중석 네 줄을 덮을 만큼 커다란 흰 천에 붓으로 글귀를 휘갈겨 적은 이 현수막 한 장에 응어리져 있었다. 구로다는 이 현수막을 보고 도요카프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2008년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도요카프는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만년 꼴찌였다. 넉넉지 않은 재정 탓에 선수에게 거액의 이적료나 연봉을 지급할 여유가 없었다. 선수들은 자유계약(FA) 신분을 얻자마자 떠났고, 외국인선수들은 입단을 거절했다. 도요카프의 일본시리즈 마지막 우승은 1984년.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6개 구단)에서 4위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당연히 가을야구는 없었다.
구로다는 이런 도요카프를 외면하지 않았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를 거친 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해 도요카프로 복귀했다. 양키스와 재계약하지 않으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거액을 들고 러브콜을 보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분명히 있었다.
구로다는 이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도요카프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1997년 프로로 입문해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도요카프에서 야구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싶었다. 샌디에이고가 제안한 금액은 1800만 달러(약 205억원). 도요카프가 구로다에게 지급한 연봉은 5분의 1 수준인 4억엔(약 44억원)이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남은 야구 인생이 길지 않을 것 같다. 공 하나하나에 얼마나 마음을 담아 던질 수 있을지 생각하면 도요카프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공을 던지는 게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 같다.”
구로다는 이렇게 말했다. 도요카프의 2차 스프링캠프로 복귀를 하루 앞둔, 그리고 40세 생일(2월 10일)을 보내고 엿새 지난 2015년 2월 16일 히로시마에서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붕괴 직전이던 도요카프는 구로다의 복귀 두 시즌 만인 올해 돌풍을 일으켜 일본 프로야구를 휩쓸었다. 센트럴리그 최종전적 89승2무52패. 6할대 승률(승률 0.631)로 리그를 정복했다. 1991년으로부터 25년 만에 탈환한 우승이었다.
그 돌풍의 중심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24경기에 등판해 10승 8패 평균자책점 3.09 기록한 구로다가 있었다. 도요카프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승승장구해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센트럴리그 우승과 마찬가지로 25년 만에 달성한 대업이다.
41세 구로다에게 남은 과제는 생애 처음으로 도전하는 일본시리즈 1승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생투’다. 맞은편엔 현세대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괴물투수’ 오타니 쇼헤이(22·니혼햄 파이터스)가 있다.
오타니는 최고 시속 165㎞의 강속구를 뿌리면서 투타를 겸업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올 시즌 마운드에서 10승 4패 평균자책점 1.86, 타석에서 22홈런 67타점 타율 0.322를 작성했다. 지난 16일 홈구장 삿포로돔에서 열린 퍼시픽리그 파이널스테이지 최종 5차전에선 7-4로 앞선 9회초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일본시리즈 진출을 직접 확정지었다.
구로다와 오타니의 맞대결이 벌어질 일본시리즈는 오는 22일 도요카프 홈구장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개막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