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탈(脫)스펙 탈을 쓴 스펙채용

입력 2016-10-17 14:09
하반기 공개채용 시즌인 요즘 취업 준비 생(이하 취준생)들은 자기소개서 쓰랴, 면접 준비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준생들의 취업 합격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스펙이었다. 학벌, 학점, 자격증, 공인어학성적 심지어 외모까지도 스펙의 범위에 포함되었고 결국 스펙사회는 ‘취업성형’, ‘취포자(취업을 포기한 사람)’ 등 여러 부작용들을 낳았다. 

그러나 최근 많은 기업들이 스펙에서 벗어나는 ‘탈스펙 채용’을 도입하고 있다. 채용에 있어 불필요한 스펙들을 제거하고 지원자 본연의 직무 능력으로 선발하겠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탈 스펙 채용 도입 당시 사람들은 능력 중심 사회의 등장, 폭 넓은 기회 제공 등 평등한 취업 사회의 도래를 기대했다.

탈(脫)스펙 탈을 쓴 스펙채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홍주리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어떠할까? 탈 스펙을 선언한 대기업들의 2016년 공채 지원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학점 및 어학성적 제한 폐지, 사진 등록 폐지 등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학력사항 및 어학능력 기재란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89.2%가 비공개 요건으로 탈락자를 결정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탈 스펙이 사회 흐름에 따른 겉보기용일 뿐 여전히 스펙 채용이 남아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취준생들이 많이 찾는 취업 커뮤니티를 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탈 스펙 이라면서 왜 어학 기준이 있는 걸까요?’, ‘탈 스펙 별로 체감되지 않네요.’, ‘직무 경험을 쌓으려면 결국엔 스펙을 쌓으라는 말인가.’ 라며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한 탈 스펙 이었는가.

물론 탈 스펙은 좋은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또한 올바른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평등한 취업 사회에 도달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탈 스펙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탈 스펙을 선언한 기업들은 본연의 취지에 맞도록 철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방식이 실패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말 뿐인 교묘한 탈 스펙인 것이다. 기업은 겉으로는 스펙을 보지 않는 척하면서 결국엔 스펙 중심으로 뽑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하여, 불필요한 항목을 제거하고 오로지 지원자의 역량을 알 수 있는 항목만으로 지원서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직무 능력을 중점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직무와 관련된 상황 속에서 미션을 주고, 지원자가 그 미션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는지 보는 방식의 채용도 있었다. 이와 같이 직무와 관련된 지원자 고유의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국내에도 이와 같은 방식이 확산된다면 기업에게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채용할 기회를, 지원자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불러올 것이다.

스펙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된 탈 스펙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스펙 시대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간절한 취준생들에게 희망고문만 주는 채용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등 채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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