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떨리죠. 긴장되고 잠도 설쳐요. 모든 면에서 진지하게 운동에 임하는 성실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에이스’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타이틀과 함께 달려온 가드 김진유(22·건국대)가 프로농구 코트를 정조준하고 있다. 16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는 차분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농구는 인생의 전부”라던 김진유는 간절히 키워온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김진유는 육상 꿈나무였다. 상주 상산초 2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오로지 달리기만 했다. 숱한 사내아이들이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말이지만 단지 뛰는 게 즐거웠단다. 그랬던 그는 우연한 계기에 농구공과 인연을 맺었다. 김진유가 뛰는 모습을 지켜본 당시 상산초 농구부장이 ‘농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의 에이스 생활은 그때 그렇게 시작됐다.
김진유는 상산초-상주중-상산전자고를 거쳐 건국대에 입학했다. 초중고 팀 모두 강팀은 아니었다. 때문에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에이스 역할을 도맡게 됐다. 고교시절에는 농구부 사정도 썩 좋지 않았다. 1학년 때 총 7명의 선수가 있었다. 190㎝의 키를 가진 김진유는 센터 포지션도 봐야했다.
2학년 때는 선수가 5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그 중에서 가장 오랜 선수경력을 가진 게 김진유였다. 그는 “당시 농구부 친구들은 거의 중학교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어요. 조금 늦은 편이었죠. 대회에 나가서 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그래도 김진유는 꿋꿋이 팀의 주포 역할을 해내며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건국대에 입학한 김진유는 2학년 때 다시 에이스의 역할과 마주했다. 3학년이던 지난해에는 대학농구리그에서 거의 풀타임에 가까운 출전시간을 가져갔다. 건국대는 정규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에이스로서 부담감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제 역할을 못했을 때 밀려오는 중압감은 더 컸다. 그럼에도 김진유는 정규리그 우승 확정과 31연승을 앞둔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종료 0.9초를 남기고 극적인 중거리슛으로 찬물을 끼얹으며 승부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쩌면 에이스라는 단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진유는 올해 초 오른쪽 무릎 내측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자마자 입은 부상이라 심적으로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복귀해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빨리 재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라고 당시 느꼈던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재활에 매진했고, 예상보다 빨리 코트에 복귀했다. 처음엔 부상 여파로 장기인 돌파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금세 이겨냈다. 건국대는 올해 대학농구리그 플레이오프 6강까지 올랐다. 지난달 21일 열린 경희대와의 8강전에서 김진유는 26점 14리바운드로 득점력을 뽐내며 완전히 부활한 모습을 보였다.
2016 대학농구리그는 끝났지만 김진유는 여전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3일 충남 아산에서 막을 내린 2016 전국체육대회에도 충북 대표로 참가했다. 신인 드래프트를 눈앞에 둔 지금도 경기력을 유지하고자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고 있다.
김진유의 롤모델은 정영삼(32·인천 전자랜드)이다. 그는 “프로에서도 슈팅가드를 하고 싶어요. (정)영삼이 형의 돌파 기술과 슈팅 능력, 에이스 기질을 닮고 싶어요. 전 프로에 가게 된다면 슛 적중률을 더 높여야할 것 같아요”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드러냈다. 이어 “항상 초심을 잃지 말자. 늘 하던 대로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라며 “장점인 투지와 근성을 잘 살려서 좋은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프로에 도전하는 각오를 전했다.
김진유는 18일 열리는 KBL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1라운드 중후반이나 2라운드 초반 지명을 노린다. ‘일부 팬들이 김진유를 보면 정겹다고 하는데 어때요’라는 질문에 그는 “하하, 아직 촌티를 못 벗었나 봐요. 제게 관심 가져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