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여유로워졌다고? 세월이 준 선물이죠” [인터뷰]

입력 2016-10-15 13:54 수정 2016-10-15 14:08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르성이 짙은 영화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목숨 걸고 찍었고, 결과물 또한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아수라’에 대한 배우 주지훈(34)의 진심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는 지난 8일 무대인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 그리고 애정이 그득했다.

‘아수라’ 개봉 즈음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아수라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영화”라며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지쳐 그만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자꾸 시도해보게 되더라. 그렇게 동기부여를 시키는 게 김성수 감독의 매력인 것 같다”고 했다.

악인들의 치열한 사투를 그린 영화에서 주지훈은 차츰 악에 물들어가는 문선모 역을 맡았다.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절친한 동생이었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밑으로 들어가 충성하는 인물이다. 입체적인 변화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상황이 변해가는 걸 좀 더 친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선모라는 캐릭터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큰 일이 꼭 어떤 계획 하에 일어나지 않잖아요. 대부분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죠.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말려 들어가는 순간을 그린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연민이 있다”는 주지훈은 “영화에서 극적인 상황이 설정되는데 그 모티브는 거의 일상에서 가져온다. 우리 사회에 스트레스가 만연해있지 않나. 당장 뉴스만 훑어봐도 그렇다. (그에 비하면) 영화 속 사건이 그렇게 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정신질환 같은 문제가 되게 많잖아요. 불면증 만성피로 이런 게 정신적인 데미지거든요. 되게 심각한 거예요.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가볍게들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예요. 저도 잠을 잘 못자요. 돈 많은 사람은 안 부러운데 잠 잘 자는 사람이 너무 부러워요. 저 목 디스크도 있어요. 아프면 다 소용없어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죠. 고통은 주관적인 거기 때문에.”

‘아수라’ 촬영은 분명 고됐다. 연기 난이도가 높을 뿐더러 체력 소모도 컸다. 하지만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정만식 등 선배들과의 호흡도 큰 힘이 됐다. 주지훈은 “그들의 치열함과 열정을 보고 많이 배웠다. ‘와, 저렇게까지 하는 구나. 저렇게 해야 되는 구나’ 싶었다”고 감탄했다.

“저는 까마득한 후배인데 작품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 성심성의껏 귀 기울여주시는 게 놀라웠어요.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무의식적인 무시가 있지 않을까?’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순간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근데 또 후배가 나 같아야 되는 거지. 술도 잘 먹고 같이 놀자면 잘 놀고 그래야지(웃음).”


어느덧 경력 11년차의 배우다. 모델로 데뷔한 주지훈은 MBC ‘궁’(2006)을 시작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초반에는 다소 싸늘했던 관객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달라짐을 느끼면서 적응해나갔다.

“세월이 쌓여가는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이제는 현장이 너무 재미있고 편하고 좋아졌어요. 한 이틀 쉬면 못 견디겠어. (다른 거) 할 게 없어요.”

주지훈은 “예전에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며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니까 여유가 생기더라. 세월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고 웃었다.

괜스레 쑥스러워했던 연기 데뷔작 ‘궁’도 흐뭇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나의 처음이니까 내가 가장 못할 때잖아요. 예전에는 ‘어우~’ 이러면서 못 봤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런 능력치를 떠나서 ‘풋풋하다’ 이런 게 보이더라고요.”

‘20대 때 말랑말랑한 작품을 좀 더 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이제와 든다. ‘궁’ 성공 이후 하이틴물 제안이 많이 들어왔으나 고사했더랬다. 그때는 ‘이게 언젠가 끝날 수 있다,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30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지 않은 거죠. 여전히 청춘인데 사람들은 은근히 나를 어른으로 대하고…. 40대가 되면 외양이나 사회적인 시선이 또 달라지겠죠. 때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걸(웃음). 그래서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30대 중반, 현재의 주지훈은 얼마든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준비가 돼있다. 그는 “과거에는 판타지적이고 정형화된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설정화된 역할도 부드럽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의욕을 보였다.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옛날에는 보기만 해도 ‘어우, 이건 못 하겠다’ 그랬었는데 지금은 ‘어려운데, 이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남자의 언행일치란. 주지훈의 차기작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 ‘신과 함께’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촬영에 열심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