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2차대전] ‘메갈 충격’에 인터넷·정치권도 격랑

입력 2016-10-14 17:22 수정 2016-10-17 07:49

일베저장소(일베)의 등장으로 촉발된 ‘1차 온라인 대전’ 이후 6년여 만에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이번에는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메갈리아(메갈)가 촉매제다. 메갈에서 급진적 남혐(남성혐오) 사이트인 워마드가 파생되고 강남역 추모 현장 시위를 겪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1차 대전을 통해 일베와 반(反)일베, 혹은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렸던 커뮤니티 세상은 남혐과 여혐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다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과 언론매체까지 가세하면서 파열음은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2차 온라인 대전, 사분오열하는 커뮤니티

지난해 여름 박곰돌이라는 작가가 그린 ‘커뮤니티 싸우는 만화’를 보면 네티즌들의 메갈(워마드)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만화의 큰 뼈대는 이렇다.

‘헬조선’이 아직은 평화로웠던 시절, 온라인 세상은 일베와 오늘의유머(오유), 여성시대(여시) 등 삼국으로 분할돼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한다. 관심을 얻기 위해 반인륜적 언동을 서슴지 않는 일베는 극우보수 진영, 일베를 잡기 위해 형사고소마저 마다치 않는 오유는 진보 진영, 남성 편향적 사회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여시는 여성 진영을 나눠 지배한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균형은 ‘여혐혐(여혐사회를 혐오한다)’으로 무장한 ‘메갈리안’(메갈을 하는 네티즌)이 등장하면서 처참히 깨지고 헬조선은 종말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커뮤니티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네티즌들이 모이는 웹사이트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초창기 시절의 ‘웃긴대학’과 ‘디시인사이드’ ‘오유’가 커뮤니티의 3대 시조로 불린다. 온라인 게임 열풍을 타고 ‘와이고수’가 등장했고, 2000년대에 들면서 ‘루리웹’ ‘SLR클럽’ ‘MLB파크’ ‘클리앙’과 같은 굵직굵직한 커뮤니티가 탄생했다. 이어 육아나 쇼핑, 스포츠, 인테리어, 인터넷강의, 패션, 해외반응, 영화비평 등 특화된 분야의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베 충격’에 이은 ‘메갈 충격’… 혼돈의 인터넷

일베가 등장하기 전의 인터넷 여론은 단조로웠다.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나서면서 비교적 통일된 목소리를 냈다. 대체로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는 진보적 색채를 띠었다.

그러다 2010년 디시인사이드의 베스트 게시물을 따로 모아놓는 일베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일베는 엽기를 뛰어넘는 패륜, 파시즘 성향의 게시물로 온라인 세상을 흔들었고, 일베에 대항하는 ‘반(反)일베 전선’이 형성됐다. 오유는 최전선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일베에 맞섰다. MLB파크와 클리앙, 보배드림, 와이고수 같은 거대 커뮤니티들도 ‘일베 때리기’에 합세했다.

일베는 숱한 공격에도 살아남았다. 뭇매를 맞을수록 ‘파괴적이고 선동적인’ 게시물을 올리며 단련됐다. 급기야 극우보수 진영이 일베로 결집했다. 이 때문에 진보에 치우쳤던 인터넷 문화를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일베 충격’으로 발발한 1차 온라인 대전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 메워질 수 없는 균열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2차 온라인 대전은 지난해 8월 메갈에 이어 올해 1월 워마드가 생기면서 촉발됐다.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방한 메갈과 워마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혐(女嫌)을 남혐(男嫌)으로 깨뜨리겠다’고 주창했다. 이들은 극단적인 일베식 용어를 차용하면서 이를 ‘미러링’이라 불렀다.

1차 대전이 정치 이념적 충돌이었다면 2차 대전은 양성 대결의 성격을 띠었다. 메갈과 워마드는 여혐 분위기를 타파한다며 독립투사를 능욕하고 태극기를 조롱했다.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오메가패치 등의 인스타그램을 만들어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남성이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한 남성의 신상을 퍼뜨렸다. 메갈과 워마드 득세는 남성 중심의 인터넷 세상에 엄청난 쇼크를 안겼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수년간 으르렁댔던 오유와 일베가 심정적으로나마 공동 전선을 구축할 정도였다.


“재기해! 재기해!” 오프라인으로 번진 갈등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현장에서 빚어진 혼돈은 온라인 전쟁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된 대표적 사례다. 남혐 세력은 ‘살女(여)주세요. 넌 살아男(남)았잖아’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등 주장을 담은 포스트잇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범죄자 잘못이지, 한국남자 잘못 아니다’라거나 ‘천안함 용사는 남자라서 숨졌다’는 반박 구호가 등장했다.

추모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일부 여성들이 여혐범죄가 아니라는 일단의 남성들을 향해 “재기해”를 외쳤다. ‘재기해’란 ‘남성인권운동가’를 표방했던 고(故) 성재기씨를 비하하는 용어다. ‘남자가 그리 못나게 굴 거면 성재기처럼 돼라’라는 뜻이다.

내 주장을 펴기 위해서라면 고인을 비하하는 용어마저 거침없이 쓰는 젊은 여성들 모습은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에게는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강남역 추모현장에서 응축된 갈등은 지난 7월 ‘클로저스 성우 교체 파문’으로 폭발했다. 메갈이 제작했다는 티셔츠를 인증한 여성 성우를 온라인게임 클로저스 개발사인 넥슨이 교체한 일이 불씨가 됐다. 찬반 여론이 엇갈리면서 넥슨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웹툰 작가들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격돌했다. 반(反)메갈 진영은 성우 교체를 비난하는 웹툰 작가의 퇴출을 요구했다. 이들이 활동하는 레진코믹스에서 회원 탈퇴 움직임도 있었다.

그리고, 갈등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더 이상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오프라인에 모습을 드러냈고, 남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메갈과 워마드를 옹호하거나, 이들의 주장에 동조한 곳은 여지없이 공격을 받았다. 정의당과 언론매체들도 여기에 휘말리며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메갈과 워마드 회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넥슨 본사에 몰려가 성우 교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극단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깊은 성찰 필요”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네티즌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더 차별화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커뮤니티가 ‘양지화’되는 이유를 차별화로 설명했다. 곽 교수는 14일 “처음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만으로도 사회적 파급력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의견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면서 차별화를 두기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에서의 행동이 행정 마비를 일으키거나 대중 관심을 유도하는 등 사회적 이슈화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곽 교수는 커뮤니티가 여론몰이의 장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모방화에서 찾았다. 그는 “온라인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면 모방화를 거쳐 또 다른 커뮤니티로도 번진다. 자신이 낸 의견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더욱 공고화되면 오프라인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양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차별화를 강조하다 극단까지 치달은 의견이 오프라인으로 쏟아지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는 “사회 규범에서 다소 벗어난 의견들이 세를 이루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며 “소수인종이나 성 차별 등 사회에선 고립된 생각들이 커뮤니티에서는 서로를 확인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들이 증폭돼 자칫 엉뚱하게 정치적 동원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하대 국문학과 김명인 교수는 온라인 갈등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됐다는 점은 의의가 있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대결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비슷한 사람이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 ‘악화’(惡貨)가 ‘양화’(陽貨)를 몰아내는 경우가 많다. 일베의 극단성이 회원 간 경쟁으로 조성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메갈이 일베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커뮤니티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논리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차분히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장기적으로 온건하고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상기 신은정 김동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