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테너는 가성(假聲)으로 여성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를 말한다. 성악에서 아직 낯선 이름인 ‘카운터테너’에 대해 정민호(36)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민호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로크시대 이전, 여성들이 무대에 설 수 없는 시대에 여성의 음역을 담당하는 파트가 필요했는데 그걸 담당하는 이들이 보이 소프라노였다”며 “하지만 변성기가 지나면 소리가 변하니까 아름다운 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거세를 했고 그들은 카스트라토라고 불렸다. 이후 거세는 불법이라 없어지게 됐고 발성과 가성을 연구해 여성의 음역대를 노래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사람을 카운터테너라고 한다. 카운터테너 안에서도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영역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정민호는 과거에 테너였지만 현재는 카운터테너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과 재학 중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설 무대가 없었어요. 내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학교 강당에서 독창회를 했는데 그때 인후염이 와서 잘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절망했고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연주 때 잘 해보려고 칼을 갈았죠. 교회 연습실 집 이렇게 생활을 했는데 그때는 후두염이 와서 말이 아예 안 나왔고 졸업연주 전날 말이 나왔어요. 많이 힘들었고 노래가 아닌 하나님이 다른 걸 원하시나 하면서 방황을 했어요.”
성악과 조교 제의로 대학원을 준비하게 된 그는 성악의 두려움과 좌절감으로 합창지휘과 석사로 진학했다. 대학원 수업 중 마지막 학기 때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합창음악의 거장인 윤학원 지휘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고 바로크 전문지휘자인 김선아를 만나 바로크음악에 눈을 떴다.
“김선아 선생님이 이끄시는 바로크전문합창단 공연을 갔었는데 요한세바스찬바흐의 곡을 연주하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어요. 그 동안 노래하기 너무 싫었는데 그때는 너무 노래하고 싶었어요. 바로 합창단에 들어가서 열심히 했습니다.”
이후에 정민호는 연세대학교 고음악과정 박승희 교수를 만나 카운터테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카운터테너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카운터테너를 시작한 그 해 2011년 바르크음악의 거장인 와사스즈키 지휘자와 LG아트센터에서 첫 솔로 무대를 가졌다.
“지금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유학을 갔다 오지도 않고 경험도 많지 않은데 카운터테너로 활동하면서부터 과분한 무대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생각을 넘어서서 일하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셨어요.”
정민호는 오랜 시간 소망했던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의 고음악 성악과 석사로 합격했다.
“직장도 있고 와이프, 아이들까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로 유학을 포기하고 있었어요. 내적으로 고민이 클 때도 있었지만 다 내려두고 마음의 평안을 찾은 상태였죠. 그런데 이번 네덜란드 행은 하나님께서 이끄셨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어요. 서류 전형에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때까지 모두 주님이 주관하셨습니다. 7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확신이 들어 서른일곱의 나이에 유학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모태신앙인 정민호에게는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항상 기도하실 때 열방에서 주님을 높이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기도하셨다”며 “고3 때 경북고등학교 브니엘 중창단을 하면서부터 노래가 행복하다는 걸 느끼고 성악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배와 찬양이 저에게 가장 행복하고 복된 일”이라고 말했다. 정민호는 2009년부터 서울 광진구 자양교회 ‘할렐루야’ 찬양대 지휘자로 섬기고 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