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급성심정지로 갑자기 사망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1)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혁주를 이렇게 떠나보내니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추모했다.정경화는 “권혁주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음악을 지독히도 사랑한 청년이었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토록 빨리 이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권혁주와 정경화는 인연이 깊다. 정경화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평창 대관령 음악제 무대 등에 오르며 인연을 맺었다.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브랜드 공연에서 권혁주와 함께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등을 연주한 김정원은 “혁주야, 네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한 음악가였는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아이처럼 순수했던 네 성품도. 너의 실연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지만 네 음악이 세상에 남긴 위로와 감동은 영원히 기억될거야"라고 애도했다. "늘 과로에 시달렸던 너, 이제는 편히 쉬렴. 많이 그리울 거다"라고 덧붙였다.
권혁주와 스마트폰 SNS 창에서 나눈 대화를 페이스북에 캡처해 올린 작곡가 류재준은 "이게 마지막 대화였는데, 도저히 믿기 어렵습니다. 너무 아프고 아프고 아픕니다. 며칠 후에 갈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을 걱정합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공연기획사 스톰프뮤직도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주자의 길을 걸었고 무수히 많은 무대를 우리에게 남겼지만 서른 해의 짧기 만한 생은 안타깝기만 하다. 삼가 명복을 빈다”는 글을 올렸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무대는 소프라노 임선혜와 함께 했다. 4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린 대구콘서트하우스의 명연주시리즈 ‘임선혜 & 앙상블 오푸스 볼프 이탈리안 가곡집’ 공연이 고인의 유작 무대가 됐다. 임선혜는 “아직도 수많은 사진에서 이렇게 살아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권혁주는 한국 음악영재의 1세대로 통한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며 한국 젊은 음악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그는 세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7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 김남윤 교수를 사사한 후 9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모스크바 중앙 음악학교에서 수학한 권혁주는 11세에 차이콥스키 청소년국제콩쿠르를 2위로 입상하며 바이올린 영재로 두각을 나타냈고, 19세이던 2004년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파가니니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칼닐센바이올린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서 주목받았다.
이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은 물론이고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와 칼라치스트링콰르텟, 올림푸스앙상블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특히 실내악에 많은 애정을 쏟은 차세대 연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6년에는 제2회 금호음악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