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님 '가난 인증서' 쓰고 생리대를 직접 받아가라고요?

입력 2016-10-12 14:28 수정 2016-10-12 17:06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에 수혜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전국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29만명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겠다고 지난 3일 발표했습니다. 이 중 9만2000명은 아동센터 등 시설을 통해 지원하고 19만8000명은 보건소를 이용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리대가 필요한 청소년들은 보건소와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을 통해 3개월 분량의 생리대를 지원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보건복지부의 ‘생리대 지원 사업’이 생리대 지원 대상자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유인즉 보건복지부가 각 지자체에 ‘생리대 지원 대상자인 청소년들이 보건소나 아동복지시설을 직접 방문해 생리대 지원 신청서를 작성한뒤 생리대를 받아가도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생리대 지원 신청서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e메일, 세대주의 인적사항을 적어야 합니다. 또한 건강보험증이나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 사본도 제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 수급자 여부에도 동의해야 합니다.

정부보다 앞서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신청을 받아 택배 배송을 해왔던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정부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며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6월  파문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보다 앞서 생리대 지원사업을 펼쳐왔습니다. 지차체들이 '생리대 지원 사업'에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지원 대상 청소년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신청을 받고 보내줄 것인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홈페이지와 우편을 통해 희망자를 신청 받고 여성 청소년들을 배려해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배송직원이 생리대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별도 포장까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전주시도 생리대와 생리대 속옷 등을  택배로 배송해 여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섬세한 배려로 지원해왔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3개월 치의 생리대를 지원받기 위해선 지원 대상 청소년들은 보건소를 직접 방문하고, 신청서를 작성한뒤, 공무원의 동의를 받아 생리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가뜩이나 민감한 시기의 여성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지원받기 위해  보건소를 방문해야 하는 발걸음을 상상해보셨나요?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는 생리대 지원 대상을 만 11세부터 만 18세로 한정했습니다. 지침대로라면 생리가 빨리 시작되는 만 10세 이하 저소득층 청소년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셈입니다.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은 지난달 27일 열린 관계기관 회의에서 이런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침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침에 네티즌들은 “왜 국민을 거지 취급하는가? 가난 인증서 쓰고 생리대 받아가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분노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대단한 것을 주는 것도 아닌데 어른으로서 참 부끄럽다”며 “보여주기식의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생리대 지원 사업’은 3개월 한시 조치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마련된 생리대 지원 사업이 단순히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사업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정부의 배려 없는 생리대 지원 사업으로 인해 소녀들이 두 번 눈물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