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에 묻힌 19세기 대한제국 역사, 120여년만에 부활

입력 2016-10-12 09:53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근대적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이후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고종의 독립을 위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로 13년만에 막을 내렸다.

 고종이 머물렀던 덕수궁과 정동길에 스며있는 19세기 대한제국의 역사가 120여년만에 부활한다.

 서울시는 12일 대한제국이 선포됐던 환구단 앞에서 정동의 역사·문화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정동(貞洞) 그리고 대한제국 13’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정동 일대의 역사·문화를 점검, 종합 재생하고 보행길을 통해 명소화하며, 나아가 자원과 장소성을 보전해 현 세대 및 미래세대와 공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겼다.

 덕수궁과 정동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한국의 역사를 간직한 원공간이다. 개항 후 덕수궁 뒤편으로 각국 공사관이 들어서면서 외교타운이 형성됐고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 병원, 근대식 교육기관이 세워졌다. 영국과 러시아 공사관, 정동제일교회, 성공회성당, 배재학당, 이화학당 그리고 이대병원의 전신인 보구여관 등이 대한제국 시기에 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정동길 역사재생 전략의 핵심은 서소문청사, 옛 국세청별관부지 등 새로운 거점공간 2곳을 신설하고 이 거점과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들을 연결한 5개 코스, 2.6㎞의 역사탐방로 ‘대한제국의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길’은 구 러시아공사관, 영국대사관을 비롯해 정동제일교회, 성공회 성당, 환구단 등 정동 일대 역사문화명소 20여곳을 아우른다.

 특히 대한제국의 출발을 알리는 환구대제가 거행된 주요 공간인데도 그동안 접근성이 낮아 방치됐던 환구단(프레지던트호텔옆)과 서울광장을 잇는 횡단보도가 이날 개통됐다.

 이로써 대한문에서 환구단에 이르는 최단경로 보행로가 조성되고 덕수궁과 환구단을 잇는 대한제국 시기의 길이 다시 열렸다. 환구단은 고종이 황제 즉위식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일제에 의해 해체된 후 현재는 석조대문 등 일부만 보존돼 있다. 1967년 사적 제157호로 지정됐다.

 시청 서소문청사는 시민에게 열린 새로운 경관거점이 된다. 현재 13층에 있는 전망대를 15층으로 이전하고 옥상과 연결,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광무전망대’를 설치한다. 또 1층에서 전망대로 바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용편의를 높인다.

 서소문청사 주차장 출입구는 기존 덕수궁 돌담길에서 서소문로 방향으로 변경해 덕수궁 돌담길(대한문~정동분수대)로의 차량진입을 줄이고 보행환경을 개선한다. 주차장 출입구 이전으로 확보된 공간은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됐던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판매점인 ‘손탁호텔’ 풍 카페로 조성한다.

 옛 국세청 별관부지는 2018년 6월 ‘세종대로 역사문화 특화공간’(연면적 2899㎡)으로 거듭난다.

 지상은 ‘비움을 통한 원풍경 회복’이라는 취지로 덕수궁, 성공회성당 등 주변시설과 조화를 이루는 탁트인 역사문화광장이 조성된다. 지하에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 들어서며 지하보행로를 통해 시청역, 시민청과 바로 연결된다.
 시는 이날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간 조성에 들어갔다.

 ‘대한제국의 길’을 대한제국 국장(國章)을 활용한 바닥돌 표시를 따라 걸으며 정동의 대표 역사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미국 보스턴의 ‘프리덤트레일’ 같은 대표적인 역사탐방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정동의 역사경관을 관리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으로 옛 덕수궁역과 옛길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가로와 필지선을 보전하고 미래유산, 근현대 건축자산을 발굴해 ‘통합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

 박원순 시장은 “오늘은 그동안 잊혔던 대한제국 역사의 재조명을 통해 정동의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날”이라며 “‘대한’이라는 국호, ‘국민’이라는 지위, ‘국민주권국가’를 태동시킨 개혁의 대한제국 역사를 돌아보고 국권회복과 국민권력시대를 향한 대한민국의 갈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