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절규와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신현우(68)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 가습기 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하는 변호인에게도 “위약금이 문제가 되면 대신 내줄테니 사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피해자 임성준군이 어머니 A씨와 함께 신 전 대표 등의 17차 재판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야구모자를 쓴 임군의 코에는 산소 튜브가 꽂혀있었다. 이날 A씨는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자신들이 잘못해서 많은 아이들이 아프거나 (세상을) 떠난 걸 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게 맞다”고 절규했다.
이어 “다들 집에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라며 “그 아이들은 건강히 잘 지내고 다른 아이와 같이 평범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울먹였다.
A씨는 “우리 아들 이렇게 만든 제가 죄인인 것 안다. 평생을 지켜만 보면서 벌 받으면서 사는 것도 안다”며 “이 벌이 부족하다면 더 받겠다. 그러나 이게 제 잘못만은 아니지 않나”라며 흐느꼈다.
임군은 “이름이 뭐니”라고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이름 석 자를 겨우 말했다. A씨는 피고인들에게 “이 아이의 얼굴을 보라”고 했지만, 피고인들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딸을 잃은 B씨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대부분 직장을 잃거나 또는 가정을 잃었다”며 “단순히 피해자가 발생하는 차원을 넘어서 가족들이 모조리 해체되고 파괴되는 현실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신 전 대표 등을 변호하는 변호인단을 향해서도 절규했다. 그는 “신 전 대표 등을 변호하기 위해 1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책임이 없다’ ‘죄가 없다’고 변론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사임하라. 위약금이 문제가 되면 피해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보전해드리겠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으로 출석키로 했으나 나오지 않은 호서대 유모(61) 교수를 18일에 다시 증인으로 부르며 구인장을 발부했다. 유 교수는 옥시에 유리하게끔 가습기 살균제 실험을 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