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 대권 잠룡들이 인지도 제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귀국이 내년 1월로 예정된 가운데 연말까지 한 자릿수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대선 레이스에서 완전히 뒤처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아울러 반 총장의 귀국 후 행보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선 반 총장이 언제 대권 레이스에 공식적으로 뛰어들지를 놓고 추측성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과거와는 다른 적극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다. 한 충청권 의원은 9일 “반 총장이라고 해서 경선 레이스를 피하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현실 정치의 벽을 넘기 어렵다는 시각에 대해선 “국제무대에서 갈고 닦은 반 총장의 ‘정치력’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다른 의원은 “여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갖고 있는 반 총장이 쉽게 여당의 경선에 합류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반 총장이 내년 1월 ‘향후 행보를 고민해보겠다’는 귀국 메시지를 던진 뒤 한동안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반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반 총장 자신이 국민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으니 귀국 즈음해서 그 이후의 일에 대해 고민을 하실 것”이라며 “지금 나오고 있는 정치권 얘기는 전부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반 총장을 견제하는 여권 후보들의 행보는 빨라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국정감사 후 전국 곳곳을 돌며 민생 현안을 챙기는 현장 행보를 재개할 계획이다. 최근 태풍 피해를 입은 부산 지역 상인들을 만나 복구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강연 정치’를 이어가며 민감한 사안에 대한 소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6일 부산대 특강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해 “공권력이 과잉 진압을 해서 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라며 국가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대학 특강을 이어가며 비정규직을 배려하는 사회적 대타협 등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모병제와 수도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등 ‘이슈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후보들이 각자 자신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를 띄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여권의 대권 경쟁 구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반 총장의 정치적 파괴력이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데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내년 대선 판도를 바꿔놓을 변수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을 매개로 한 비주류 후보들의 합종연횡이나 여야를 아우르는 ‘제3지대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누가 확실한 주자로 뜰지 모르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되기 때문에 잠룡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경쟁만 더욱 가열될 것”이라고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