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다토 뚯또 아 떼(Ho dato tutto a te·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어요)”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칼라스는 극중에서 케루비니의 오페라 ‘메데아’에 나오는 이 대사를 종종 읊는다. 원래는 메데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당신’이 오페라 또는 음악으로 해석된다.
지난 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 ‘마스터 클래스’에서 윤석화가 읊은 이 대사는 “나는 연극에 모든 것을 바쳤어요”로 들렸다. 사실 윤석화는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지난달 20일 갈비뼈 6대가 부러지고 등뼈에 실금이 간 전치 6주의 중상을 당해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원래 예정됐던 앙코르 공연 20일 가운데 후반부 10일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윤석화는 휠체어에 앉은 채 무대 위에 등장했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은 그는 1막 중반까지는 휠체어에 앉은 것을 빼고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선 채로 절규하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선 고통이 묻어났다. 혹시라도 대사를 잊어버릴까봐 이틀 전부터 진통제도 맞지 않았던 그는 2막에선 연신 오른쪽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통증 때문에 호흡이 다소 부족한 듯 했지만 온몸을 바친 그의 투혼에 관객은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커튼콜 무대에 양준모 등 출연 배우들과 함께 등장해 관객에게 인사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 ‘오 솔레 미오(O sole mio·오 나의 태양)’를 합창했다. 그는 “관객분들은 저희의 태양입니다. 기다려주시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는 윤석화를 응원하러 온 인사들로 가득했다. 특히 그와 자매 같은 사이인 박정자와 손숙이 눈에 띄었다. 대기실에 들어선 윤석화는 이들을 보고 “언니” 부르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박정자와 손숙은 동생을 얼싸안고 “괜찮아. 잘했어” “연극이 너를 일으켜 세웠다”라며 힘을 불어넣었다. 미소를 되찾은 윤석화는 “이제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며 답했다.
원래 ‘마스터 클래스’는 윤석화와 유난히 인연이 깊은 작품이다. 1997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제외된 그는 슬럼프에 빠진데 이어 연극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자진하차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은퇴설이 제기된 가운데 1998년 2월 강유정이 연출한 이 작품에 출연한 그는 최연소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가 올해 3월 LG아트센터에서 데뷔 40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이었다. 사생활과 관련해 종종 구설수에 오르고 있지만 그는 당시 공연에서 배우로서 존재감을 다시한번 뽐냈다. 극중 주인공 칼라스가 복잡다단했던 사생활 속에서도 평생 음악에 헌신한 것처럼 그 역시 평생 연극에 헌신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16일까지 공연하는 이번 앙코르 무대를 끝으로 그는 대표작이자 인생작 ‘마스터 클래스’와 영원히 작별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