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엘리트 사무관, 산하기관 여직원 '갑질' 성폭행

입력 2016-10-06 15:23
행정고시 출신의 금융위원회 사무관이 산하 금융기관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현)는 준강간·준강제추행 혐의로 금융위 소속 5급 사무관 L씨(32)를 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L씨는 지난 4월 금융위의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 20대 여직원 A씨 등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만취한 A씨를 껴안고 입술을 맞추는 등 추행했다. 이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A씨를 노래방으로 업고가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은 당시 동석했던 금융기관 과장이 자리를 뜬 뒤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사건 당일 처음으로 소개받아 인사를 나눈 사이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다음날 경찰 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상담 받고 속옷 등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러나 ‘갑’의 지위에 있는 사무관을 신고했다가 오히려 불이익이 돌아올까 두려워 ‘수사진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쓰고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개월 간 A씨를 설득한 끝에 본격 수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은 증거물에서 나온 정액과 L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아 결국 L씨를 구속한 뒤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L씨는 검찰 송치 이후에도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식으로 줄곧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법무법인 2곳의 변호사 9명을 담당 변호인으로 선임해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금융위 측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금융당국의 사건 은폐 의혹 및 잘못된 언론 대응으로 2차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경찰 관계자에 의하면 지난 7월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금융위가 조직의 명예와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종로경찰서를 상대로 조용한 사건 처리를 요청했다”며 사건 무마 시도 의혹도 제기했다. 금융위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 관계였다’고 대응하는 등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것이 김 의원 주장이다.
 김 의원은 “이번 사건은 금융권의 구태적인 접대 문화와 조직적인 은폐 의혹, 비상식적인 언론 대응 등 자정 능력을 잃은 권력기관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고 비판했다.

 금융위는 “소속 직원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갑스럽게 생각한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징계를 의뢰하는 등 엄정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예기치 못한 수사 개시 통보를 7월에 받은 뒤 감사담당관 등이 사건 경위를 듣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1회 방문했고 사고 무마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