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컵라면으로 때우는 거야? 그거 먹고 어떻게 일하려고?” 지난 4일 오후 1시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3층 복도를 지나던 강수연(50)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 어두운 복도 의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직원들을 다독인다. “폐렴걸린 OO는 좀 어때? 괜찮대?” 지나가는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넨다. 영락 없이 아이들을 챙기는 엄마 말투다.
제21회 부산영화제 개막을 이틀 앞둔 이날 영화제 사무국은 몹시 부산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싶었던 영화제가 한국영화를 프로그램에 넣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 겨우 한 달이다. 예정된 날짜에 맞춰 개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불가능해보였던 올해 부산영화제를 출범시킨 중심에는 강 위원장이 있다. 그의 강한 의지와 강단, 리더십이 없었다면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터이다. “위원장을 맡은 후 하루도 내가 이걸 왜 했나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해운대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영화제를 하는 한이 있어도 영화제는 꼭 열려야한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그를 부산에서 만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제가 드디어 개막한다. 소감이 어떤가.
“지난 5월초까지만 해도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에 확신이 없었다. 영화제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개최를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계속 됐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부산시, 비상대책위원회, 영화인들 모두 한마음을 모았다. 일부 영화인의 보이콧으로 한 달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램 확정은 커녕 게스트도 결정이 안됐었다. 일각에선 한국영화없는 영화제를 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게 말이나 되느냐. 결국 한국영화 프로그램이 기적적으로 한 달 만에 완성됐다. 영화인들의 영화제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계나 부산시 일각에선 영화제를 꼭 열어야 하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제가 꼭 열려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영화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올해 건너뛰고 재정비해서 내년에 열면 더 좋아지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영화제가 망가지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과 영화인에게 돌아간다. 국내만 생각하면 안 된다.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아시아 다양한 국가와 문화의 영화를 선보여왔다. 이곳에 오면 아시아영화의 트렌드를 읽고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이 영화제는 지속된다는 신뢰와 확신을 세계에 주어야한다. 어떤 정치·경제적 이유나 시장의 논리에 따라 영화제가 안 열리는 순간, 이 영화제가 어떻게 훼손될 지 알 수 없다. 이미 수 많은 해외영화제의 사례가 있다. 게다가 우리를 모델로 삼고 있는 중국과 일본, 홍콩 영화제 등이 바로 우리 뒤를 추격해오고 있다.”
-영화제를 개최하기에 시간과 자원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초청작 면면은 알차 보인다. 이번 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주력한 분야는.
“올해는 예산도 줄고 시간도 부족했다. 마켓과 부대행사는 대폭 줄였다. 하지만 단 1%도 포기 못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영화다. 단 한편도 포기 못한다. 부산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발굴·지원·연대·교육·비전제시를 중요시해왔다. 해외 프로그래머들이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실제로 단 한편도 줄이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한 달밖에 준비 시간이 없었다. 개막작 ‘춘몽’(장률 감독)이 가장 마지막에 결정됐다. 배우들이 깜짝 놀랄만큼 연기를 잘하고, 관객이 만족시킬만한 대중적인 영화다.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그 외 아시아 신인감독의 영화, 콜롬비아 특별전, 이두용감독 특별전 등 새로운 감성을 느낄만한 영화를 많이 준비했다.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충분히 즐겨 달라.”
[사진] 부산=김지훈 기자
부산=한승주 문화팀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