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민망스러운 일에 부딪히는 때가 있다. 아들이나 딸이 대학 입학시험에서 낙방하는 때이다.그 사실을 알게 되는 다른 교수들이 아버지의 역량을 의심할 것 같아서다.…뜻대로 안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내가 잘 아는 목사는 자녀의 문제로 크게 애태웠다. 목사의 자녀가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교우들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어린애를 수재나 영재로 만들려고 간섭하고 고생시키는 것은 볏모를 잡아 빼서 빨리 자라게 하는 것 같이 위험하다. 강아지를 키워도 그렇다. 먹을 것을 적당히 조절해주고 함께 있어주면 된다. 그 이상의 간섭과 강요는 금물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어머니들의 욕심과 교육 당국의 간섭 때문에 후퇴하고 있다. …내 가정은 기독교와 더불어 자랐다…그러나 나는 애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설정하는데 기독교 정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알려주고 싶었다. 신앙은 가장 소중한 인생의 선택이다. …나는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다. 애들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더불어 봉사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노 교수는 부모는 자녀들에 대해 욕심보다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혜보다 귀한 것은 자녀들의 일생을 위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철수와 영희'가 나왔던 교과서로 배웠던 소위 근대화세대들이 할아버지가 되어 갑니다. 베이비붐 세대라고도 하지요. 가난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가난한 그들은 순박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후 교회에서 나워주던 알사탕 하나에도 감사했고, 성경 예화를 듣고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그분들 세대의 역할을 마쳐갑니다. 100년을 산 노 철학자의 말씀처럼 자손을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시노트]
고 김태형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8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담아...
‘참 아버지답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만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입니다.
2016년은 아버지, 김태형 화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을 저는 아버지를 위한 기념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보냈습니다.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를 만나고 동화책 속 다양한 그림들을 대하면서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그림은 모두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반듯하고 구수한 한국인의 모습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모두 생전의 아버지다운 순수하고 동화 같은 그림들입니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늘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화목한 가족이 등장하는 것도
아버지 그림의 특징입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서늘한 바람덕분에 전시회 하기 아주 좋은 이 가을을 맞아,
대한민국 최초의 교과서 속 삽화들과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의 그림들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수많은 그림들을 선별하는 일과 그 밖에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오랜 준비 끝에 이렇게 전시회를 열고 여러분들을 초대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아무리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과거는 잊혀 지더라도
30여 년간 모든 교과서의 그림을 그리셨고 평생 그림과 함께 하셨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전시회입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상고머리 영희와 옛 교복을 입고 반듯하게 웃는 철수를 만나시면서,
예전 소박하고 정겨웠던 추억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힘든 시절 우리에게 그림으로 훈훈함을 만들어 주신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이 전시회의 시작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격려해준 안사람과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이 일을 응원해준 남동생과 누이들...
더위와 싸우며 이 전시회를 위해 힘써 주신 많은 분들,
전시회를 찾아와 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6년 10월 큰아들 김주영 씀
■ 故 김태형 | Kim, TaeHyung
1916.4.9 개성 출생 - 1993.10.18 작고
1920년대 개성 송도중학교 졸업
1942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1948~1979 초등학교 삽화 1학년~6하년 교과서 삽화 제작
1950년대 동성중학교 미술교사로 1년간 재직
1954년 3월 ~ 9월까지 조선일보 연재소설 “푸른날개” 삽화 그림
1950년대 ~1980년대 문교부(교육부) 촉탁화가로 근무
2004 “철수와 영이-김태형 교과서 그림”(영월책박물관) 전시
2006. 10. 5 교육부 “제1회 교과서의 날”제정 개인공로상 수상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