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편뉴스] '터닝메카드가 뭐길래' 새벽 6시부터 줄세운 대회

입력 2016-10-03 03:25 수정 2016-10-03 14:23

새벽 5시30분. 주간 회의가 있는 월요일보다 더 일찍 눈을 뜹니다.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알람이 오전 5시부터 10분 단위로 울려 퍼지고 있으니 일어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죠. 하지만 눈은 쉽게 떠지지 않습니다.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마저도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시달렸을 오늘입니다. 터닝메카드 2016 테이머 챔피언십이 열리는 날이니까요. 남자 아이라면 더더욱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TV에서 광고가 나올 때마다 “여긴 꼭 가야한다”고 외치는 아들의 성화에 온라인 사전등록을 시도해 봤지만 눈깜짝 할 사이 마감되는 통에 실패했죠.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자 집 안엔 한바탕 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좀처럼 그치지 않는 울음을 달래보려는 심산으로 500명까지 가능하다는 현장접수를 해주겠노라 호언장담하죠. 그날부터 아빠의 귀에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10월2일의 계획이 무한반복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최소 1년은 괴롭겠다는 생각에 조금 적극적으로 움직여봅니다. 지난해 후기를 샅샅이 뒤져 본 결과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현장접수는 온라인보다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새벽 6시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대회 당일. 집에서 대회가 열리는 삼성 코엑스몰까지 거리는 약 11㎞. 오전 5시50분에 집을 나선 아빠와 아들은 30분 만에 도착합니다. 오전 6시20분인데 설마 줄이 있겠냐 싶어, 자신이 일등이라 으쓱해 하던 아빠. 하지만 그도 잠시. 부자가 도착했을 땐 이미 앞에 여덟 가족이 있습니다.

대회장 입장은 오전 9시인데 이들은 대체 몇 시에 출발한 걸까. 의문의 눈동자를 돌리며 눈치작전을 펼칩니다. 오전 7시를 10분 남겨둔 채 주최 측은 대기표를 나눠줍니다. 다행입니다. 입장시간인 9시까지 기다릴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었는데 말이죠. 8번이라는 대기표를 받고 뒤를 돌아보니 뒷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섰죠.

오전 10시까지 현장으로 오라는 진행요원의 안내에 아빠와 아들은 집에 갔다오는데 합의 합니다.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집을 나섰기에 잠깐이나마 귀가해야 했죠. 혹시 우승이라도 하면 추레한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힐 수 없다는 상상, 아니 김칫국을 사발 째 들이키면서 말이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탁에 차려진 밥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뒤 눈곱을 떼기 위해 욕실로 들어갑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부자가 씻는데 다정한 모습은 오랜만, 아니 처음인 듯합니다.


만만의 준비를 마친 아빠와 아들은 동생과 엄마와 함께 다시 행사장으로 출발합니다. 네 식구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8시30분. 우산을 쓰고 코엑스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 손엔 터닝메카드 정리함이 들려 있습니다. 아마도 작년에 참가했던 이들이겠죠.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행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혹여 아이의 손을 놓칠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하는 순간이었죠. 여기저기서 엄마‧아빠의 손을 놓지 말라는 신신당부의 말이 들려옵니다. 입장 전에 나눠준 미아방지스티커를 앞뒤로 붙입니다. 부모의 이름, 전화번호, 집주소까지 확인하며 긴장을 타고 있는 순간 입장 아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9시30분이 조금 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터닝메카드 주제곡. 아이들은 떼창을 합니다. 부모도 아이에게 들어온 풍월이 있기에 흥얼거립니다. 행사장 안에는 벽을 중심으로 부스들이 설치돼 있고 중앙에는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좌석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죠.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부모들은 아기의 짐 가방에 어깨가 빠질 지경입니다.

유모차 대여는 없습니다. 공간이 워낙 협소하다보니 집에서 가져 온 유모차도 처치곤란입니다. 사람에 치여 당최 끌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부스 마다 각종 체험행사와 게임들이 진행되고 있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집니다. 종종 상품을 받는 기회까지 있어 아이에겐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예선 경기는 50명씩 진행됩니다. 미취학 어린이들은 레드홀 리그에서, 초등학생은 블루랜드 리그에서 경기를 합니다. 560번인 아들은 레드홀에 입장하기 까지 무려 2시간이 걸렸습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난 뒤 곧바로 시작된 경기였지만 12시가 돼서야 순서가 됐죠. 그 사이 아빠와 아들은 핫도그와 소시지로 이른 점심을 먹으며 부스 탐방을 합니다.


전시된 장난감과 1등 상품에 승리를 다짐하기도 합니다. 엄마와 동생은 뒤늦게 난 자리를 지키기 위해 ‘꼼짝 마’를 합니다. 의자와 의자 사이 간격이 워낙 좁다보니 한번 자리에 앉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일찌감치 경기에 진 가족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공간이 조금 생겼지만 질서가 지켜지지 않아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일부 가족들은 줄 맞춰 배치한 의자를 옮겨 동그랗게 만들어 앉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이동통로는 더 혼잡해졌습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화장실과 쓰레기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가자 모두에게 정리함을 경품으로 나눠주는데 그 상자를 버릴만한 곳이 없습니다. 행사장 군데군데 쓰레기통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죠.


주최 측이 지급한 대형 쇼핑백에 상자를 비롯한 쓰레기를 넣어뒀다가 집에 가서 버리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은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쓰레기통 주변엔 빈 상자와 일회용품들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주최 측 임원으로 추정되는 정장 차림의 신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정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쓰레기통보다 더한 건 화장실이었습니다. 전국에서 2만명 가량이 한곳에 모였는데 화장실은 단 한군데 밖에 없었습니다. 무대 근처에 화장실이 있었지만 장비가 많아 위험하다며 입구 쪽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게 했죠.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재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안내 때문에 급해도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화장실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여자화장실은 행사장 입장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긴줄이 계속됐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한 줄서기를 하며 기다리던 한 엄마는 “여기선 밥도 물도 먹으면 안 되겠다”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시간의 대기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배틀에 돌입. 아들과 아빠는 야심차게 터닝메카드를 꺼내 슈팅을 해봅니다. 그러나 장난감이 변신을 하지 않는 바람에 1차 예선에서 탈락. 2시간을 기다려 경기에 참여했는데 탈락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서러움에 울음을 터뜨립습니다.

지난해도 이런 사례가 많았는지 사회자는 연신 “아이가 져도 잘했다고 격려해줘라. 부모가 속상해하고 아쉬워하면 아이는 더 속상하다”고 안내했죠. 세심한 진행 멘트에 부모의 마음이 훈훈해 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우는 아이를 달래다 집이 아닌 마트로 향합니다. 경품으로 받고 싶던 모델을 신용카드에 스크레치 내가며 아이에게 안기로 한거죠. 결국 야심차게 준비한 대회 참가는 눈물로 끝났지만 부자는 추억이 방울방울 생겼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기로 합니다.

혹시 이날 삼성 코엑스몰에 오지 못한 어린이와 부모들을 위해 현장 공영 동영상을 투척하면서 맘편뉴스 여기서 마칩니다. 직캠영상이니 흔들려도 양해해주세요.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