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한미약품이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다국적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한미약품으로부터 계약금 약 8500억원에 사들인 기술로 진행하던 폐암신약개발을 포기하면서다. 이로써 한미약품은 지금까지 수령한 계약금과 기술료 등 718억여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받을 수 없게 됐다.
한미약품은 30일 베링거인겔하임이 내성표적 폐암신약 올무티닙(HM61713)의 권리를 포기함에 따라 권한을 반환받는다고 공시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올무티닙의 모든 임상데이터 재평가, 폐암 표적항암제의 최근 동향과 미래비전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미약품에 알려왔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올무티닙 기술을 수출했다. 규모만 7억3000만 달러(8500억원)에 달하는 대형계약이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지난 6월에는 내년 글로벌 허가를 목표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는 베링거인겔하임의 결정에 올무티닙의 시장성 악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 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지난해 11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무티닙이 내년에 임상시험을 마치고 허가를 받는다 해도 경쟁에서 한발 뒤처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로 올무티닙을 사들인 중국 생명공학기업 자이랩도 신약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받지 못할 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통상 신약 관련 계약은 개발단계에 따라 돈을 나눠 받는다. 때문에 신약개발이 중단되면 애초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나머지 돈은 포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약 718억원을 계약금과 기술료 명목으로 받았다. 한미약품이 밝힌 계약규모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한미약품이 직접 신약개발을 완료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해외임상시험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될 뿐만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글로벌제약사가 장악하고 있는 해외 유통망을 뚫기도 어렵다. 계약파기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해외제약사에 신약기술을 수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6곳의 대형 제약사들과 맺은 신약기술 수출계약은 7조8000억원에 이른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한미약품, 8500억원 규모 신약수출 계약 '도루묵'
입력 2016-09-30 16:17 수정 2016-09-30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