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걸(43)은 한국 발레리노의 선구자로 불린다. 1995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은 동양인 발레리로노는 처음으로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라단에 입단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활약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임용돼 귀국했다.
그는 1997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무용수로는 처음 3위에 입상했고 이듬해 김지영과 파리 국제무용콩쿠르 듀엣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김용걸은 2000년대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이다.
김용걸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망설이고 우왕좌왕하는 스타일인데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씩 도전해 나간다”며 “진정성 있고 순수한 기도라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화려한 경력 뒤에 눈물의 기도가 있었다.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를 나간다고 했을 때 아무도 안 될 거라고 했다”며 “혼자서 정말 외로웠고 힘들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다. 점점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상을 받아서 안 될 거라고 했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고 싶었다. 그때 러시아 발레리노가 1,2등을 했고 제가 3등을 했다”고 전했다.
부산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용걸은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서울로 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는 하숙집 근처의 교회를 발견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강남구 소망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교회에 갔는데 대학 강의보다 목사님 말씀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많은 위로를 얻었고 상처를 보듬어주셨죠. 그때부터 주일은 빼먹지 않고 예배 드리러가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프랑스에서 활동할 때였다. 잦은 부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10년 동안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있을 때 부상을 많이 당했어요. 한국에서 발레 할 때는 별로 부상이 없었는데 거기에 180명이랑 경쟁을 하고 승급도 해야 하는데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제 자신이 싫었고 압박도 심했어요.
체계적으로 연습을 하지 않고 무리를 하다보니 몸이 못 버티고 다리에 잔금이 왔어요. 쉬면 금이 아무는데 계속 연습을 하니 나중에 완전히 금이 갔고 아파서 운동을 못했어요. 그럼 할 수 없이 두세 달 쉬면서 치료를 받죠. 그리고 재활해서 복귀. 그런 시간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퐁네프한인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왜 이런 부상을 겪게 하시는 걸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시간도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이라고 순종했다. 부상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발레 대신 많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봤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한국에 와서 바로 안무가로 활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용수는 동작에 대한 완성도와 표현에 대해 연구하는데 그것을 못하니까 다른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갔어요. 안무에 흥미를 갖게 된 거죠. 프랑스 큰 레코드가게에 가서 계속 음악을 듣고, 프랑스 영화를 엄청 봤어요. 좋은 음악들과 영화들은 저장하고 기록해두었죠. 그때의 시간들이 안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안무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발레계 최대 축제인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2011년 1회부터 올해 5회까지 모두 참가한 단체는 김용걸댄스시어터가 유일하다. 2014년 ‘워크 2S’와 2015년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로 2년 연속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201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된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는 지난해 그에게 무용예술상 안무상을 안겨줬다.
“학생들에게 경험이 되니 수업의 일환으로 공모전이나 페스티벌 등에 나가게 됐어요. 무용할 때만큼 안무의 성취감이 크더라고요. 평론가들도 인정을 해주고. 계속 하게 됐어요. 저에게 부상은 달갑지 않은 친구이고 안 왔으면 좋겠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인 것 같기도 해요.”
오는 10월 14, 15일에는 신작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을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왕따, 성직자 비리, 성매매 등 우리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담고 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월호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나라의 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한지 몰랐고 너무 화가 났죠. 마침 2014년 8월 ‘케이발레월드(K-Ballet World)’에서 폐막작을 해달라고 의뢰가 와서 세월호에 대한 내용을 담은 ‘빛 침묵 그리고…’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광화문 나가서 시위는 못 하지만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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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