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확한 용어로 집회의 자유 침해” 헌재, 옛 집시법 위헌 결정

입력 2016-09-29 14:48 수정 2016-09-29 14:52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는 집회·시위’,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시위’를 금지한 옛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3조 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는데, 해당 조항은 불명확한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헌재는 29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옛 집시법 제3조 제1항의 위헌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9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이 조항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미치게 하기 위한 집회·시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시위는 누구도 주관하거나 개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재는 우선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는 집회·시위를 금지한 조항 제2호 부분이 자의적인 처벌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어떠한 집회·시위가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재판과 관련된 집단적 의견표명 일체가 불가능하게 됐고, 나아가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한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시위 금지한 조항 제3호에 대해서도 헌재는 비슷한 판단을 내놨다. 규제 대상인 집회·시위의 목적이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고,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설정할 구체적 기준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사실상 사회 현실이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집단적 의견 제시는 봉쇄됐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해당 조항들은 1978년 3월 집시법이 개정되며 모두 삭제됐고, 집회·시위의 금지 사유는 범위를 좁혀 개정된 상태다. 옛 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이들은 1970년대 유신헌법 철폐와 노동3권 보장을 주장하며 시위를 하다가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2011년부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현재 진행 중이다. 재심개시를 결정한 서울고법과 전주지법이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했다.

헌재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해 보호되는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야 한다고 헌재는 판시했다. 결국 불명확한 용어로 기본권 제한 한계를 설정할 구체적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부분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헌재의 결론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