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분쟁 1위는 ‘방 빼라’ 소송… 우울한 대한민국 현주소

입력 2016-09-26 17:03

“임대료를 못 내는 이들이 많아진 사회 현상이 소송 실태에 투영됐다. 상가 임대료 지급능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 원룸 월세를 내지 못하는 청년 세대가 소송을 빈번하게 한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이 가장 자주 법적 다툼을 벌이는 주제는 ‘방 빼라’ 소송으로 조사됐다. 26일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민사본안사건(1심 기준) 30만4319건(소송가액 54조5072억여원) 가운데 건물명도·철거 소송이 3만4568건(11.4%)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4년간 1위였던 대여금 소송(3만3458건·11.0%)을 앞질렀다.

건물명도·철거 소송은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음에도 임차인이 부동산을 비워주지 못하고 무단 점유할 때 대개 발생한다. 법조계는 이 소송의 증가를 결국 경제난으로 해석했다. 민사법 전공의 오시영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는 주택과 상가건물을 소송의 두 가지 축으로 제시하며 “청년 비정규직 문제와 장년의 조기은퇴 문제가 소송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최근 늘어난 1인 가구의 세대주인 청년들은 취업난으로 소득능력이 낮은 실정이며, 이때 비교적 소액인 보증금은 쉽게 사라진다는 것이 오 교수의 진단이다. 전통적 가계부채 고위험군인 자영업자들도 고액의 월세를 납부하기 어려워하고, 자영업자의 60~70%가 사업을 정리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오 교수는 “자영업자 폭증에 따른 제살 깎아먹기, 청년 알바 세대의 한계를 건축주들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주거형태가 급격하게 바뀐 것도 건물명도·철거 소송의 증가세와 연관 있다. 명도소송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이종명 변호사는 “2~3년 전만 해도 대부분 상가와 관련한 명도소송이었는데, 이제는 주택의 명도소송이 20% 가량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경기가 나빠지는 가운데 주거에만 다달이 일정한 돈을 지불하는 형편으로 바뀌면서, 소득 능력이 떨어진 임차인 다수가 소송에 직면했다”고 덧붙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