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윤영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온 것 외에 내내 집에서 지내고 있다. 면역력이 약해진 인영이를 데리고 무리하게 시골과 처가에 가지 않기로 아내와 결정했기 때문이다.
인영이는 매일 엄마하고만 있다가 아빠와 언니가 집에 내내 있으니 신이 났나 보다. 하루 종일 바쁘다. 요 며칠 놀아주면서 인영이 별명을 게릴라로 명명했다. 이놈, 하루 종일 바쁘게 신출귀몰하며 집안을 어지럽힌다. 지 방 어지럽힌 걸 치우다보면 어느새 소꿉놀이 한다고 장난감방을 물 천지로 만들고, 거기를 닦다보면 마루를 ‘빠방’들로 주차장으로 만든다. 엄마가 왜 그리 매일 힘들어하는지 알 것 같다. 놀이터는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일어나자마자 놀이터 가자고 떼를 쓰고, 밥은 왜 그리 싫어하는지 밥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녀야 입에 몇 숟갈 넣을 수 있다.
그래도 지난 설을 생각하면 게릴라를 쫓아다니는 일상이 참 행복하다. 인영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맞았던 지난 설에는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었다. 아내와 인영이는 무균병동에서, 나는 서울 한구석에서, 윤영이는 여수 외할아버지 댁에 있었다. 설날 밤, 혼자 맥주 몇 캔을 마시며 훌쩍이다가 잠들었던 기억도 난다.
이번 추석은 그랬던 지난 설날에 비해 감사할 일이 많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내며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인영이도 그때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잘 놀고 있다. 동생을 빨리 낫게 해달라고 달님에게 기도한 윤영이도 집에서는 착한 언니, 학교에서는 모범생(아내가 윤영이 담임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하고 일주일째 기뻐하고 있다)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 아마 내년 설과 추석에는 예전처럼 인영이를 데리고 처가행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예쁜 한복도 맞춰줘야겠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다음주 또 주사바늘에 힘들어 할 것을 생각하니 이번 주말에는 게릴라 소탕보다는 나도 게릴라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이틀 인영이와 함께 신명나게 어질러보기로.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