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베르트 공간 상의 유체역학을 이용한 양자측정 문제 해답 제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물리학부 서한결(21)씨가 학교가 추진 중인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에 제출해 최종 선정된 연구과제다. 현대물리학의 핵심 분야인 양자 역학의 측정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관점의 연구라는 뜻이다. 서씨는 23일 “현대 물리학의 한 갈래인 양자역학은 반도체, 컴퓨터 개발 등 현대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끌었고, 과학이론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 중 하나가 양자역학의 측정문제”라고 자신의 연구과제를 설명했다. 카이스트 이순칠 자연과학대학장은 “지금 당장 실용적으로 응용될 여지가 없다는 이유에서 활발히 연구되거나 각광받지 못한 주제지만, 기초과학 분야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학교는 서씨의 연구를 위해 매년 2000만원씩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간 지원키로 했다. 연구결과의 성공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30년에 걸친 위대한 도전’ 정도로 의역되는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는 글로벌 난제나 인류 지식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 등에 대한 연구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일종의 ’한우물 파기‘ 지원 계획이다. 프로젝트는 단기성과 위주나 시류에 편승돼 ‘돈 되는 연구’에만 매달리는 국내 연구개발(R&D) 풍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최근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도 자극제가 됐다. 지난해 중국 전통의학연구원 투유유(86) 박사는 30년간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추출하는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기초과학강국 일본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21명이나 배출한 배경에는 ‘돈이 안 되는’ 연구에도 수십년간 매달리는 장인정신이 있었다.
카이스트는 지난 19일부터 학부생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공모를 시작했다. 연구과제는 ‘현재 핫 이슈가 아니어야 하며, 10년 안에 상업화하기 어려운 주제여야 한다’고 못박았다. 연구제안서에 연구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등을 적시할 필요도 없다. 연구주제에 대한 개요와 세계적인 연구 현황, 본인의 독창적인 해결방법 등만 담겨 있으면 된다.
보통의 연구 제안서들이 연구의 상용화 가능성을 필수 항목으로 내세우는 기존 국내 풍토와는 다른 방식이다. 카이스트 강성모 총장은 “실패 위험성이 커서 외부 연구비를 받기 어렵지만, 학문 특성상 꼭 필요한 주제라야 한다”면서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다음달까지 서씨의 연구를 포함해 10건의 연구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원인 중 하나인 ‘타우’ 단백질 연구를 신청한 바이오및뇌공학과 최명철 교수는 “글로벌 난제인 알츠하이머병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로 무엇보다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연구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위대한 연구를 하라” KAIST 실험
입력 2016-09-24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