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잃어버렸다.”
대검찰청 특별감찰팀(팀장 안병익 서울고검 감찰부장)은 중·고교 동창으로부터 지속적인 금품·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김형준(46) 부장검사의 자택을 21일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김 부장검사가 올 들어 예금보험공사에 파견근무하며 사용하던 업무용 휴대전화를 포함, 개인용 컴퓨터, 메모 등을 폭넓게 확보하려는 차원이었다.
업무용 휴대전화를 확보하려던 특별감찰팀은 앞서 지난 20일 예금보험공사를 압수수색했지만 실패했다. 김 부장검사가 파견이 해지돼 서울고검으로 전보될 때 반납을 하지 않고 들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한번 허탕을 쳤던 특별감찰팀은 이날 자택 압수수색에서도 끝내 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찾지 못했다. 김 부장검사는 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수첩은 압수됐다.
특별감찰팀은 이 업무용 휴대전화가 없이도 대부분의 혐의사실은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부장검사에게 수억원을 들여 ‘스폰’을 했다고 주장하는 김모(46·구속)씨의 휴대전화를 앞서 압수, 서로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상당 부분 확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개인적으로 지운 게 없다면, 김 부장검사와 주고받은 메시지 가운데 90% 이상은 확보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정식 감찰에 착수한 특별감찰팀은 지난 5일 김씨로부터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총 3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김씨와 김 부장검사 틈의 금전거래, 사기·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김씨에 대한 김 부장검사의 조언 내용 등이 이를 통해 확인됐다.
특별감찰팀은 지난 12일 제출받은 김 부장검사의 개인용 휴대전화를 포렌식 복구했지만, 김씨로부터 확보한 내용을 뛰어넘는 특별한 증거는 얻지 못했다. 주된 이유는 ‘텔레그램’이다. 검찰 관계자는 “주로 텔레그램을 이용했고, ‘즉시삭제’ 기능을 활용했기 때문에 별도의 내용을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으로 ‘비밀대화’를 활용하면 서버에 흔적이 남지 않고, 일정 시간 뒤 자동삭제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김 부장검사와 김씨 역시 이러한 기능을 서로 언급하며 텔레그램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 이상의 대화 내용이 확보됐다고 특별감찰팀이 자신한 까닭은 뭘까. 텔레그램 대화 내용 상당수가 사진으로 보관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김 부장검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화면 촬영 기능을 이용해 갖고 있었다. “꼭 부탁이니 집 사무실 점검하고 휴대폰 버리고… 꼭 살아남자 친구” 김 부장검사가 검찰 수사를 앞둔 김씨에게 간곡하게 말했지만, 특별감찰팀은 이 대화까지 파악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금전거래를 할 때에는 자신의 수사 피의자였던 박모(46) 변호사 가족의 계좌를 통했다. 김씨에게 어디론가 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면서, 송금자의 명의를 매번 다르게 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김씨가 검찰 수사를 받을 때에는 자신이 함께 가던 고급 주점에서 일찍 자리를 떴다고 말해 달라고 했고, 압수수색에 대비해 메모 등을 점검하라고 했다.
김 부장검사의 이러한 비위에서 시작된 특별감찰·수사는 다양한 방면으로 폭이 넓어지고 있다. 우선 특별감찰 당사자인 김 부장검사가 김씨를 공갈 혐의로 수사의뢰하며 ‘역공’에 나섰다. 김씨가 계속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협박에 시달린 나머지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빌린 돈 이상인 3000만원을 주게 됐다는 내용이 수사의뢰서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논란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김씨의 사기·횡령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은 “엄정한 수사로 피해를 회복해 달라”는 진정서를 대검에 제출했다. 김 부장검사가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여러 차례 술 접대를 한 KB투자증권의 고위 임원 1명은 지난 20일 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개인적인 만남이며, KB투자증권 직원이 받던 수사와는 관련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검사와 김씨의 대화 내용에 등장한 검사 다수도 연휴 기간을 포함해 대검의 조사를 받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잃어버렸다…” 자택에서도 끝내 안 나온 그의 휴대폰
입력 2016-09-21 18:08 수정 2016-09-21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