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에 발을 담근 지 어언 30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안 겪어본 게 없다. 그런 강우석(56) 감독이 ‘반성’과 ‘자기발전’을 이야기했다. 김정호 선생의 삶을 되짚으며 많은 걸 배웠다면서. 그렇기에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찍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했다.
추석 대목을 겨냥해 지난 7일 개봉한 영화는 기대만큼의 관객을 들이지는 못했다. 연휴를 포함한 12일 동안 85만여명(19일 기준)을 동원했다. 스코어는 다소 아쉽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 담긴 진심이 퇴색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잘 만들었든 못 만들었든, 어떤 평가를 받느냐를 떠나서 그냥 좋은 영화를 찍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영화적 완성도만 신경 썼던 과거 작품들과 달리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내용이 좋으니까 당당해진다”며 “우리 아이에게 ‘너 (아빠가 만든) 영화 언제 볼 거야’라는 소리도 처음 해봤다”고 말했다.
“한 사나이의 집념뿐 아니라 가족적인 메시지도 담긴 작품이잖아요. 다음번에 단순한 오락영화를 찍더라도 ‘저 사람 맨날 돈벌이하는 영화만 찍는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참 작품 선택을 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정말 새 출발하는 의미가 있어요. 나한테는 그만큼 의미 있는 영화예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이끼’(2010) 이후 찾아온 슬럼프에서 강우석 감독을 구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끼 때 다른 장르에 손을 대보고 나니까 영화 찍는 작업이 자꾸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관객이 많이 들든 적게 들든 시큰둥하고…. 언제까지 이런 나른한 작업을 해야 하나 싶었죠.”
이후에도 ‘글러브’(2011) ‘전설의 주먹’(2012) 등을 연출했지만 ‘이제 진짜 쉴 때가 됐다’는 생각만 점점 커졌다. 결국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 6개월간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 10여권을 챙겼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가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 ‘고산자’를 슬쩍 끼워 넣었다.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X자식이! 이걸 어떻게 영화로 찍어’ 그러고 덮었어요(웃음). 근데 다음 날, 그 다음 날 계속 생각이 나는 거야. ‘참 느낌이 좋았는데. 그건 뭐지? 왜 자꾸 그 책이 생각나지?’ 그래서 다시 꺼내서 봤어요. 인간의 집념과 처절함 같은 게 느껴져 울컥울컥 하더라고.”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하면서 박범신 작가가 부탁한 건 “자연 풍광을 잘 담아 달라”는 것 하나였다. 대동여지도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아름다운 강산이 잘 묘사돼야 한다는 노파심이었다. 강우석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상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장소 헌팅에 매달렸다.
“현장에서는 내가 김정호 선생이 된 듯했어요. 오죽하면 스태프들이 ‘강산자’라고 불렀다니까. 이건 팩트야. 이 영화 찍을 때는 내가 거의 미쳐있었거든. 또라이였죠 또라이(웃음).”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자연이라면 이제 쳐다보기도 싫단다. 그는 “산이고 강이고 바다고 다 싫다. 난 콘도가 제일 좋더라. 그때 타고 다녔던 차량만 봐도 속이 울렁울렁한다”며 웃었다.
강우석 감독은 실제 대동여지도의 원판을 봤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했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촬영도 못할 뻔했어요. 같이 간 촬영기사와 미술감독도 ‘이건 인간이 한 게 아닌 것 같다’며 울컥해했죠.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열정으로 빚어낸 정교함에 감탄하며 그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영화 스무 개 만들었다고 뭘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쉴까 말까’ 이상한 소리해대고…. 내가 창피하더라고. 너무 반성이 되는 거야.”
강우석 감독의 스물한 번째 작품이 나온다면 그건 아마도 김정호 선생 덕택이 아닐까. 그리고 보니 이들 두 사람,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