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딸(당시 34세)의 장기를 기증한 송종빈(61)씨는 지난 5월말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사무실을 찾았다.
내년말 국가공원으로 돌아오는 용산 미군기지 터에 고귀한 생명을 나눠주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공원 설립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송씨는 “용산공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 장기 기증자 예우 공간이 들어선다면 생명 나눔에 대한 대국민 교육과 홍보의 장소가 될 것”이라며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해 말 이미 7개 부처의 공공시설 및 컨텐츠가 선정됐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국토부는 지난 4월말 이런 용산공원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 등의 반대에 부딪혀 기존 계획을 전면 재검토키로 하고 내년 하반기까지 최종 계획안을 마련키로 한 상태다.
송씨는 곧바로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 40~50명과 함께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4000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또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기증원과 함께 국토부, 복지부,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를 찾아다니며 이들의 뜻을 전달했다.
송씨는 “다음달 청와대에도 최종 서명자 명부와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생명나눔 기념공원’ 조성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장기 기증자 추모 공원은 2009년부터 일각에서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됐고 복지부도 2011년 한때 추진했지만 부지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흐지부지됐었다. 최근 용산공원개발 계획이 공개되고 유가족들이 생명나눔 기념공원 조성을 위한 행동에 직접 나서면서 다시 탄력받고 있다.
18일 한국장기기증원과 유가족들에 따르면 용산공원은 서울 중심에 위치해 교통이 뛰어나고 서울역과 가까워 지방 방문객의 접근성도 용이한 장점이 있다. 인근에 국립박물관과 전쟁기념관 등이 있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에도 적합하다.
지난해 뇌사자 장기 기증의 57.7%가 서울‧경기 지역이었다. 때문에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등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도권 안에 기념공원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공원은 약 6만6000평방미터 부지에 기념관, 광장, 네임월(Namewall‧추모벽)로 구성된다. 네임월에는 장기 및 인체조직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다. 용산공원 외에 과천 서울대공원이 또다른 후보지로 꼽힌다. 하지만 부지 확보를 위해선 경기도의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장기기증원 하종원 이사장(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은 “생명나눔 공원은 국가 땅에 조성돼야 나라와 사회가 장기 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을 예우한다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면서 “해외 대부분의 국가들도 정부 기관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국립장기이식센터(UNOS) 주도하에 각 주별로 다양한 형태의 생명나눔 기념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리치몬드시에는 2010년 '국립 기증자 기념공원(national donor memorial)'이 조성돼 있다. 영국도 2014년 에든버러 왕립수목원에 '기증자 기념 정원(donor memorial)'을 마련했다.
하 이사장은 “현재 턱없이 부족한 장기기증으로 인해 중국 등 해외 원정 장기이식과 불법 장기 매매 같은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의 확산을 위해서도 기념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뇌사자 장기 기증은 지난해 기준 501명으로 이들에게 기증받은 장기로 모두 1628명이 새 새명을 찾았다. 하지만 이는 2만9000여명에 달하는 이식 대기자의 5.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뇌사자 장기 기증율은 100만명당 9.01명(2014년 기준)으로 스페인(36명), 미국(27.02명), 영국(20.4명), 프랑스(25.5명), 호주(16.1명) 등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 2월 7명에게 장기를 주고 세상을 떠난 이응상(당시 25세)군의 아버지 이봉화(58)씨는 “군인 등 유공자들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데,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을 한 사람들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다”면서 “생명을 나눈 사람들이 사회에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념 공간이 꼭 생겼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1년 장기 기증을 포함한 ‘나눔 공원’ 건립을 추진했지만 부지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면서 “생명나눔 공원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는 만큼, 관련 부처와 협조해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