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연극의 거장인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88세로 타계했다.
올비는 2차대전 이후 토마스 베케트나 이온 이오네스코로 대표되는 부조리극을 계승해 미국적으로 소화한 대표적 작가다.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관찰하고 신랄하게 쓰는 그에게는 ‘절망세대의 극작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30여편 가운데 대표작으로는 ‘동물원 이야기’(1959), ‘아메리칸 드림’(1960),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2), ‘키 큰 세 여자’(1990) ‘염소 혹은 실비아’(2002) 등이 있으며 3번의 퓰리처상과 2번의 토니상을 수상했다.
1928년 태어난 그는 출생 직후 친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2주 뒤 뉴욕의 극장 재벌인 올비 가문에 입양됐다. 차가운 성격의 양부모 밑에서 부유하지만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유모와 양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예술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반항심이 많아 제도권 교육과 번번이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작가가 되려는 꿈을 반대한 양부모와도 결별했다.
그는 1950년대 뉴욕에서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온갖 장르의 글을 습작했다. 특히 동성애자였던 그는 애인인 작곡가 윌리엄 플래내건(1926~1969)과 함께 살며 뉴욕의 예술가들과 빈번하게 교류하게 됐다. 당시 ‘우리 읍내’ 등으로 유명한 선배 극작가 손튼 와일더가 그에게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라고 권유했다.
30세이던 1958년 발표한 첫 단만극 ‘동물원 이야기’가 독일 베를린(1959)과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1960)에서 공연돼 호평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공원에서 처음 만난 두 남자가 대화 끝에 폭력을 휘두르다 급기야 상대를 살해하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말은 현대사회의 소외 문제를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서 교통사고로 죽은 흑인 블루스 가수 베시 스미스를 다룬 ‘베시 스미스의 죽음’(1960), 미국인의 생활을 통렬하게 풍자한 ‘미국의 꿈’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명성을 확고부동하게 해준 것은 1962년 그의 첫 장막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다. 20세기 중반 최고의 연극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교수 부부의 싸움을 통해 현대 미국 중년 부부 생활의 허위와 진실을 파헤쳤다. 이듬해 무대에 올라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외설스러운 어휘와 내용이 많고 미국의 건전한 부부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비록 퓰리처상은 받지 못했지만 토니상을 받으며 장기공연했고, 1966년 영화화돼 13개 부문 노미네이트돼 5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대성공으로 부유해진 올비는 196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예술가 지원에 나섰다. 자신의 연인이자 멘토였던 윌리엄 플래내건을 기리는 한편 뉴욕 인근 몬탁에 예술가 레지던스 시설을 지어 문학과 시각미술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했다.
이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그는 ‘미묘한 균형’ ‘바다풍경’ ‘키 큰 세 여자’로 퓰리처상을 3회 수상할 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특히 지난해 한국에서도 공연된 ‘키 큰 세 여자’는 말년의 대표작이다. 자신과 양어머니의 오랜 세월에 걸친 불행한 관계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희곡이다. 1965년 심근경색을 겪은 양어머니의 연락으로 시작된 모자간 왕래는 1989년 양어머니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된다. ‘키 큰 세 여자’는 고집센 노인을 묘사하고 있지만 모자간 갈등보다는 노년의 인간적인 고뇌를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이 모자간에 용서와 화해를 보여주지만 그는 양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양어머니가 그의 동성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미국 연극계 거장, '절망세대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 타계
입력 2016-09-17 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