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터-피셔-정경화, 올가을 세 바이올린 여제의 무대

입력 2016-09-17 00:01 수정 2016-09-17 07:43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왼쪽부터), 율리아 피셔, 정경화. DG-Anja Frers, Decca-Felix Broede, 크레디아-심주호 제공

올가을 ‘바이올린 여제’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는다. 안네 소피 무터(53), 율리아 피셔(33) 그리고 정경화(68)가 오는 10~11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독주회)을 열고 한국 관객과 만난다. 클래식 팬들이라면 세계 최고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를 잇는 이들 세 연주자의 무대를 놓치기 아까울 것 같다.



데뷔 40주년, 안네 소피 무터

10월 14일 내한하는 무터는 1976년 8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13살의 나이로 공식 데뷔했다. 클래식계 황제였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에게 발탁된 그는 2년 뒤 베를린필과 모차르트 협주곡으로 첫 음반을 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카라얀은 타계할 때까지 무터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무터의 음악인생은 카라얀 사후 그 자신이 쌓은 커리어를 통해 만개했다. 그는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그는 카라얀의 변호사였던 27살 연상의 첫 남편과 사별한 후 34살 연상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했다가 4년만에 이혼하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40년간 음악에 헌신해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70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했으며 4번의 그래미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휩쓴 것이 그 증거다. 여전히 그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군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젊은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고 있다. 한국 출신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과 첼리스트 김두민이 그의 후원을 받고 있다.

5년만의 한국 무대에서 그는 베토벤 피아노 3중주 B플랫장조 ‘대공’,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 b단조, 생상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들려준다. 1988년부터 작업해온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가 함께 무대에 선다. 그리고 ‘대공’ 연주에는 김두민도 출연한다.



21세기 스타, 율리아 피셔

2013년 드레스덴 필하모닉 내한공연 당시 협연자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피셔가 10월 21일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가진다.

피셔는 12살 때인 1995년 메뉴인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8개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성장을 거듭한 끝에 2000년대 들어 유럽 클래식계의 기대를 모으는 젊은 아티스트가 됐다.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광범한 레퍼토리를 가진 그는 독주 무대는 물론이고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의 단골 협연자로 각광받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20장의 음반 가운데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녹음한 2009년 바흐 바이올린 콘체르토 앨범은 미국 아이튠스 클래식 장르에서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잘 다듬어진 톤, 명확하고 섬세한 프레이징, 세련된 감정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0년 힐러리 한, 재닌 얀센과 함께 ‘21세기 여성 바이올린 트로이카’로 손꼽혔는데, 현재 또래들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내한 리사이틀에서는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소나티나 G장조, Op.100,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티나 D장조, D.384,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그의 듀오 파트너는 독주자로서 독일 피아노의 미래로 평가받는 피아니스트 마르틴 헬름헨이 맡는다. 두 사람은 2014년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듀오 음반을 발표한 이후 계속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돌아온 전설, 정경화

한국 출신의 원조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는 11월 19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3곡)와 파르티타 전곡(3곡) 등 6곡을 하루에 연주한다.

196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하며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아시아 출신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오랫동안 군림해 왔다. 젊은 시절 ‘동양의 마녀’ ‘아시아의 암호랑이’ 등의 별명은 그의 카리스마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1992년 영국 신문 선데이 타임즈가 선정한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 연주자’, 1995년 잡지 아시아위크가 뽑은 ‘위대한 아시아인 20인’ 가운데 한국 클래식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바 있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중단했던 그는 2010년 재기 후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랫동안 주저했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11월 서울 JCC콘서트홀 개관 기념공연으로 이틀에 걸쳐 전곡을 연주했던 그는 지난 4월 워너클래식에서 음반도 녹음했다. 올가을 발표될 이 음반은 15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앨범이다. 베테랑 프로듀서 스티븐 존스의 작업으로 진행된 녹음을 마치고 정경화가 대단히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바흐 무반주 전곡 레퍼토리는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극도의 테크닉, 체력, 집중력 등이 요구된다. 특히 전곡 연주에 꼬박 3시간이 걸리는 만큼 한번에 모두 연주하는 것은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경화는 음반 발매와 함께 서울을 비롯해 베이징, 상하이, 런던, 뉴욕 등에서 바흐 무반주 순회연주를 펼칠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