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자경단으로 범죄자 아닌 정적도 제거했다”

입력 2016-09-16 00:05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무자비한 범죄 용의자 척결로 논란이 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필리핀 대통령이 과거 자경단을 이용해 범죄 용의자를 즉결 처분하는 것은 물론 정적(政敵) 제거까지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진술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두테르테 대통령의 초법적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사진=국민일보 db)


1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상원이 개최한 ‘마약과의 전쟁’ 청문회에서 전직 자경단원인 에드가르 마토바토는 경찰과 전직 공산주의 반군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두테르테의 지시로 지난 20여년 간 약 1000명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됐다.

마토바토는 “우리의 일은 마약 판매상, 강간범과 같은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었다”며 “2007년 한 남성을 악어밥이 되도록 하는 등 50여 차례의 납치와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살해한 사람들 중 일부는 범죄자가 아니었지만 두테르의 정적이라는 이유로 살해됐다”고 털어놨다.

마토바토는 과거 자경단 임무를 방해한 법무부 국가수사국(NBI) 직원도 두테르테가 직접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두테르테가 도착했을 때 NBI 직원은 살아있었다”며 “두테르테가 이 직원을 향해 기관총 탄창 2개를 모두 썼다”고 했다. 그는 이밖에 2009년 자경단 조사에 나선 레일라 데 리마 인권위원장 습격 시도, 2010년 두테르테의 정적이었던 프로스페로 노그랄레스 전 하원의장의 지지자 4명 납치·살해 등도 모두 두테르테가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마 인권위원장은 현직 상원의원으로 두테르테 정권의 마약 용의자에 대한 초법적 처형에 대한 상원 차원의 조사를 주도하며 두테르테 대통령에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마토바토가 주장한 사건들은 이미 증거 부족으로 폐기된 것”이라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6월 30일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약 3000명의 마약 용의자가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절반이 자경단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주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기간에 필리핀의 인권 문제를 언급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내뱉어 논란이 됐다. 또 이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향해서도 “‘당신은 또 한 명의 바보일 뿐’이라고 혼잣말했다”고 비아냥거리는 등 연일 설화(舌禍)를 이어가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