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선교사(필리핀)
선교사에게 비자란?필리핀은 무비자로 30일간은 체류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관광 비자를 한 달 연장하거나 아니면 선교사 비자, 취업비자, 학생비자, 사업비자, 은퇴비자 등을 신청해서 머물 수 있습니다. 필리핀은 선교사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선교사로 나온 사람들에게 선교사 비자가 끌릴 수 있습니다. 전에는 선교사 비자를 2년씩 주어 연장하게 했는데, 요즘은 매년 갱신을 해야 합니다.
그 비용이 120만원에서 150만원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2년에 한 번 꼴이면 그나마 부담이 덜할 텐데 매년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적지 않은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은 만 35세 이상은 은퇴비자를 주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은퇴비자가 좀 더 낫다고 판단되어 은퇴비자를 신청하려고 합니다.
은퇴비자를 신청하려면 여러 가지 서류들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미리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원하는 서류가 미비가 되어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영사 서비스를 받아 범죄경력증명서를 신청했습니다. 다행이 기간이 짧아져서 10일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또 30일 이상 필리핀에 머물 경우 현지 범죄경력증명서(NBI Clearence)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같으면 몇 시간 또는 하루정도 걸릴 일인데 여기서는 신청하는 것도 까다롭습니다.
또 신청하는데 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2-3시간을 기다려 신청을 한 후 4주 후에 오라는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4주 후?’ ‘4주 후에 오라구요?’ 그랬더니 담당직원이 웃으면서 4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을 받으려면 무비자로 있을 기간으로는 모자릅니다. 4주 후에 오라고 했기 때문에 한 달은 기본이고 또 은퇴비자를 신청을 한 후 6주정도 걸리기 때문에 10월 초까지는 머물 수 있는 비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자를 관광비자로 연장하러 온 식구가 출동했습니다. 물어물어 일로일로 이민국을 찾아가 신청서류를 작성하고 신청했습니다. 이민국 직원들이 참 친절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이리가라면 이리가고 저리가라면 저리가면 됐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소요했을까 관광 비자를 한 달 연장해 주었습니다. 연장을 받고 또 다시 한 달 연장하려고 했는데 오늘 바로 안 되니 내일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준비하여 온 식구가 다시 이민국을 갔습니다. 그래서 어제 준비한 서류와 여권을 내밀었는데 직원에게 돌아온 말은 ‘결재하는 담당 직원이 급한 회의로 마닐라에 갔으니 다음주에 오라’고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어제 바로 신청하면 될 것을 구지 다음날 오라고 해서 온 식구가 힘들게 왔는데 다음주에 오라니... 힘이 빠졌지만 뭐 거기서 소리를 높인다고 마닐라 간 담당 직원이 오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가서 다시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그 날엔 담당자가 있어서 신청을 하고 비자를 연장 받았지만 두 달 연장 받기 위해선 또 2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행정 서비스가 바로 바로 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기본이 2주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연속
우리 가정도 은퇴비자를 신청하고자 한 달 정도 걸려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8월 첫 주 마닐라로 향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준비해서 공항에 도착한 후 6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갔습니다. 1시간이면 도착하는데 기내방송에서 마닐라 기상악화로 착륙을 지연한다고 했습니다. 마닐라 상공에서 1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또 다시 기내방송은 도저히 어려울 거 같다면 가까운 공항에 임시 착륙하여 기상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6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갇혀 있었습니다. 6시간 후 오후 12시 30분에 마닐라로 다시 가도 좋다는 컨트롤 타워의 지시에 따라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30분 후 천고만고 끝에 마닐라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자 비행기 안에 있던 승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쁠 수 없었습니다. 비자 신청을 오전에 마치려 했기 때문에 마치면 바로 오후 4시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려고 미리 표를 예약하고 발권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내리자 마자 오후 비행기를 연기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1시쯤 발권하는 곳에 물어봤지만 여기서는 안 되고 티켓 사무실에 가라고 했습니다.
티켓 사무실에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상악화로 자신들의 티켓을 연기하려고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기표를 받았는데 세상에나... 내 앞에 대기자가 33명입니다. 그런데 담당직원은 점심식사를 하러 가서 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담당직원은 오지 않자 중년부부로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다른 직원한테 자신의 사정을 짧은 영어로 어필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은 사정이고 당신들만 바쁜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화가 났는지 소리를 크게 내더니 됐다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자신도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 차례가 오지 않으니 창구에서 큰 소리를 내며 항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담당 매니저가 불러 표를 바꿔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순서는 아니었지만 용기를 내어 창구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더 기다리면서 조급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시간 내에 표를 바꾸지 못하면 새로 사야 하는데 어쩌지’라는 조급함과 동시에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내 차례가 와서 사정을 설명했지만 이미 발권 받은 표로 페널티를 물고 다시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더니 차라리 새로 표를 사는게 페널티를 물고 다시 예약하는 것보다 싸다고 했습니다.
비행기 안에 6시간 갇혀서 오전에 비자신청도 못한 것도 억울하고 또 표를 바꾸러 갔다가 3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사정을 설명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표를 새로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 표를 새로 사는 것이 싸다니... 약 30만원 정도 하는 표를 새로 사야 하는데 그게 싸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도 시간이고 돈도 돈인데 마음까지 상해버렸습니다.
기다리다 또 기다렸는데... 돌아오는 건 돈을 더 내고 표를 새로 사고 또 일정에 없던 마닐라에서의 숙박을 하고 다음날 비자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비자신청은 너무 쉽게 끝났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일로일로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연착이 돼서 두 시간을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탄 비행기 안에서 또다시 컨트롤 타워에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또 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타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입니다.
비자를 신청하며 많은 시간 기다렸더니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대로라면 하루 만에 끝나서 바로 돌아와야 할 것인데, 뜻하지 않은 기다림과 불편함을 겪어서 그런지 불평이 생겨났습니다. 필리핀 행정시스템이며, 공항 직원들의 불친철한 서비스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불쑥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특히 광야에서 생활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
자신들이 뜻하지 않은 일 때문에 불편함을 겪어야 했고 그 불편함은 곧 불평이 되어 하나님께 원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불편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불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지나가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나 뜻하신 바가 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되거나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지혜를 주실 것이라 믿고, 뜻하지 않게 기다려도 불평과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하나님이 분명 하시리라 믿고, 믿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간, 시간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할 것을 결단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교의 최전선에서 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들과 현지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땅끝에서] 참여를 원하시는 선교사님들께서는 200자 원고지 6매 이상의 원고를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에게 보내주시면 됩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