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의 작가 서용선, “형태가 아니라 기운 표현하고 싶어 "

입력 2016-09-17 00:02
'자화상'(2007) 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용선 작가. 아르코 미술관 제공

드로잉이 밑그림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전시장 한 벽을 가득 메운 자화상 시리즈가 그런 고정관념을 날려버리라고 외친다.

얼굴 하나를 꽉 채운 눈 한쪽, 뭉그러진 어깨….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처럼 좌우가 맞지 않고, 해체되어 다시 합체된 듯한 몸, 아크릴로 단숨에 그은 굵은 선 몇 개로 표현한 몸이다. 선이 아니고서는 검은색이 아니고서는 내면에서 솟구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자화상에 있어 드로잉은 기초 작업이 아니라 최적의 표현수단인 것이다.

“2007년 여름 한철 내내 그렸지요. 일종의 조형적인 실험입니다. 얼굴이나 신체의 한 면을 보고도 그 사람의 특징을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보면 그런 몸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날까. 그래서 특징적인 것을 찾아 분해하기도 하고 합체하기도 하고….”
서용선(65) 작가는 그런 에너지가 어디 숨었을까 싶은 낮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의 개인전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그는 2008년 정년을 10년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며 서울대 미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일부러 아침에 일어나자 의식이 내 몸을 지배하기 전에 무의식 속에서 저 그림들을 그리려고 했어요. 컬러면 어느 부분을 어떻게 칠할까 매번 생각해야 해요. 먹선을 쓰면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있어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수십 장 자화상을 격자처럼 배열한 흑백의 자화상 시리즈에는 그런 작가의 열정과 고민, 지적 번득임이 숨어 있다.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스펙터클한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는 30여년 작품 세계를 ‘드로잉’이라는 키워드로 조망한다. 이르게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졸업 직후인 30대 초반에 그린 자화상부터 가장 최근 것으로는 60대 중반인 올해 작품까지 망라한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이 전시의 첫 섹션으로 펼쳐지며, 작가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확장시켜 준 소재 ‘역사와 신화’, 마지막으로 베를린, 뉴욕, 서울, 파리 등 오늘날의 도시와 도시민들의 모습을 포착한 ‘도시와 군상’이 두 개의 전시실에 차례대로 소개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침없는 선, 강렬한 색채로 요약된다. 전시 주제가 물론 드로잉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선(線)의 작가’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색채조차 선 위에 얹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신화시리즈의 ‘반고’, ‘태양을 쏜 영웅 예’ 등은 간결한 선 몇 개로 이미지를 만들어버린다. 면조차 선을 좀 더 넓게 그은 듯한 느낌이다. 이런 그림은 밑그림도 없이 바로 그린다.

왜 선일까. “기운을 중시합니다. 기운을 표현하는 데는 선입니다. 선 안에 형태와 감각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사에 빠지면 기운을 놓칠 수 있거든요.”
'도시에서'(2016)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용선 작가. 대표작인 '도시와 군상 '시리즈를 송판 위에 새롭게 시도한 작품이다. 출근길 도시 직장인의 모습과 촛불 집회 장면 등을 삽화처럼 담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드로잉의 개념은 그에게서 확장한다. 작가는 지난해부터 송판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써서 실험을 하고 있다. 커다란 송판을 이어 붙여 캔버스처럼 만들고 그 위에 정이나 끌로 형태를 깎고 판다. 또 색을 덧칠해 형태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판화는 목판에 형태를 새기고 종이에 찍어내 완성하지만, 이 송판 그림은 나무판 자체가 완성작이다. 신작 ‘도시에서’는 송판 위에 힐을 신고 출근하는 여성, 노트북을 펼치고 일하는 남성, 시청 앞 촛불 집회 참가자, 정치인, 엘리베이터, 고층 빌딩 등이 새겨지고 칠해져 있다. 대칭도 맞지 않아 더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나무 판에다 깎고 칠한 이 작품도 드로잉이라고 했다.

“드로잉은 르네상스 이후 제지술이 발달하면서 종이가 흔해지며 미술 제작의 준비 과정으로 등장했습니다. 현대에 와선 점점 밑그림 정도로 치부되며 폄하되고 있지요. 원시시대 벽화를 그릴 때는 밑그림 없이 벽에 바로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걸 누구도 드로잉이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암각화를 그릴 때 깎고 파고하는 것, 그것도 다 드로잉이지요. 이 송판 그림이 드로잉인 것 처럼요.” 10월 2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