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병헌(46)이다. 추석 연휴에 두 편의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극장가를 휘어잡고 있다. 그가 특별출연한 시대극 ‘밀정’은 개봉 1주일 만에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고 할리우드 서부극 ‘매그니피센트7’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이어 박스오피스 3위에 뛰어올랐다. 한 배우의 출연작이 박스오피스 1위와 3위에 동시 랭크된 것은 보기 드물다.
이병헌은 두 영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과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다. ‘밀정’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의열단장 정채산으로 짧고 굵게 등장했다. “연기라면 두 말할 나위없는 배우가 필요했다”는 김지운 감독의 기대대로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의 존재감은 명대사에서도 발휘됐다.
일본 형사 이정출(송강호)과의 만남을 앞두고 염려하는 김우진(공유)에게 “매국자도 배신자도 조국은 하나다.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라며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송강호와 만나 술독을 비우는 장면에서는 호기로운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낚시 장면에서는 불우한 시절의 운명 같은 인물을 드러내고 거사에 따른 희생에 통곡을 하며 “실패를 하더라도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며 독려하는 장면에서는 우국지사의 결연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할리우드 액션블록버스터 웨스턴무비 ‘매그니피센트7’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시사회와 간담회에서 이병헌은 “추석에는 뭐니뭐니 해도 서부영화죠.(웃음) ‘밀정’도 있지만…다른 명절보다 추석에는 서부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라고 말했다.
이병헌은 ‘매그니피센트7’에 대해 “클래식한 스토리에 앤턴 후쿠아 감독의 스타일리쉬하고 쿨한 터치, 아주 통쾌한 액션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헌의 말 그대로였다. ‘매그니피센트7’은 서부의 무법자 7인이 정의가 사라진 마을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는 스토리로 고전적인 서사에, 액션 전문가 후쿠아 감독의 화려한 액션이 결합한 화려하면서도 통쾌한 영화였다.
이병헌은 7인의 무법자 중 한 명인 암살자 빌리 록스 역을 맡아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준 액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착한 역할을 맡았다. 말을 타는 것은 물론 칼과 권총, 장총을 모두 다루는 이병헌의 액션 연기는 그가 어떤 장르의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최고 배우 중 한 명이라는 걸 새삼 증명했다.
이병헌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주말의 명화’ 시간에 서부극을 봤던 기억을 언급하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카우보이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배우가 돼 카우보이가 됐다. 캐스팅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배우 감동적이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이병헌에게 사실상 두 번째 서부극이기도 하다. 그는 앞서 2008년 김지운 감독의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나쁜 놈 박창이’를 연기한 바 있다.
이병헌은 “박창이보다는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황야의 7인’에서 빌리 록스와 유사한 인물을 연기한 제임스 코번의 연기를 참고했고, 정서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코번의 연기를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서 한 단계 발전된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이전에 서부극을 찍어봐서 연기가 더 수월할 줄 알았는데, 워낙 긴 시간이 지나 총을 다루는 기술이나 말을 타는 기술 등을 모두 다시 배워야 했다. 빌리의 액션을 직접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지.아이.조’ 시리즈 등 할리우드 출연작에서 악역을 맡아왔다. 또 동양인 배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이번에 착한 배역을 따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병헌의 할리우드 행보가 눈길을 끈다. 이병헌은 “선한 역할에 대해서는 감흥이 없다”면서 “어설픈 선한 역할보다는 차라리 강렬한 악역이 낫다. 굳이 이번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동양인이 필요하지 않은 배역에 한국 배우인 내가 캐스팅됐다는 점”이라고 했다.
‘밀정’과 ‘매그니피센트7’은 이병헌의 힘과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연기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물오른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어 추석 연휴가 즐겁다. 송강호의 연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공유는 ‘부산행’에 이어 ‘밀정’에서도 열차 장면이 많은 것도 우연 치고는 독특한 우연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