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함부로 애틋하게’는 기대보다 조용하게 막을 내렸다. 묵직한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았는데 요즘처럼 살기 팍팍한 시대에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회 한 회 무던하게 걸었다. 작품이 남긴 여운이 꽤 길다.
이 아름다운 마무리는 배우 김우빈(본명 김현중·27)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극 중 한류 톱스타 신준영 역을 맡은 그는 매회 다른 색깔을 보여줬다. 풋풋한 고등학생, 까칠한 인기스타,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 사랑에 행복해하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했다.
전작 SBS ‘상속자들’(2013)에서 빛을 발했던 대사 소화력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아무리 오글거리는 멘트일지언정 김우빈은 기가 막히게 맛을 살려냈다. 좀 더 달달하게, 좀 더 로맨틱하게. 리듬감을 실어 내뱉은 대사는 거슬림 없이 귀에 들어왔다.
회를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감정선도 놓치지 않았다. 극의 줄기가 되는 멜로 라인을 단단히 지탱해준 건 김우빈의 연기였다. 노을(배수지)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밀어내야하는 복잡다단한 심경을 온전히 전달했다.
특히 불치병을 앓는 시한부 환자로서의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서서히 증상이 심해져 극심한 고통을 호소할 때의 신준영은 보는 이까지 아프게 했다. 죽음을 앞두고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에 엄마(진경)와 조우한 장면은 “김우빈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엄마, 내가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되게 열심히 살았어. 다시 살라고 그래도 이것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없어.’ 이 애절한 말을 힘겹게 이어가는 김우빈의 눈물범벅 된 얼굴. 쉽사리 잊기 어려운 명장면이었다.
중국시장을 겨냥해 100% 사전 제작된 ‘함부로 애틋하게’는 예상 밖의 시청률 부진을 겪었다. 뒤죽박죽 연출과 올드한 감성의 대본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김우빈 홀로 고군분투를 펼친다는 평이 빠지지 않았다.
김우빈은 지난 4월 이 드라마 촬영을 마치면서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신준영이라는 인물을 만나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평소 잊고 지냈던 사소한 감사함이 더 많이 떠올랐다”며 “너무나 감사한 작품이 될 것 같다. 평생 가슴속에 남아있을 작품”이라고 말했다.
시청률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음에 분명하다. 김우빈의 차기작 ‘마스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오는 12월 개봉하는 ‘마스터’는 대규모 사기 사건을 다룬 범죄오락 액션 영화다. 희대의 사기범 진회장 역에 이병헌, 그를 잡으려는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 역에 강동원이 포진했다.
김우빈은 극 중 진회장의 브레인 박장군 역을 맡아 둘 사이 팽팽한 긴장감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1차 예고편 정도만 공개됐으나 신준영과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 캐릭터인 것으로 보인다. 새롭다. 다시, 시작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