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폭로전’ 타고 들불처럼 번진 ○○패치

입력 2016-09-14 00:01
인스타그램의 사생활 폭로 계정인 ‘강남패치’와 ‘한남패치’에 올라온 내용들. 서울 수서경찰서 제공

경찰이 SNS ‘신상폭로'로 현대판 마녀사냥 논란을 일으킨 ‘패치'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남성 혐오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회원이라며 여성들의 신상을 퍼트린 ‘워마드 패치’ 운영자를 상대로 수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워마드 패치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며 사이버 민원을 제기했던 A씨에게 연락해 수사를 진행하자고 했다”며 “오늘 고소인이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일반인들 신상을 폭로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패치가 들불처럼 번지자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있다. 2주동안 ‘강남패치’ ‘한남패치’ ‘성병패치’ ‘재기패치’ 운영자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임산부석에 앉은 남성들의 신상을 퍼트린 ‘오메가 패치’ 운영자는 현재 경찰 수사를 받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혐오가 ‘SNS 폭로전’ 형태로 변질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고 진단했다.

강남패치 운영자가 붙잡히면서 ○○패치 운영자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해외 SNS 인스타그램에 100여명 사진과 과거 경력 등 허위사실을 퍼트린 혐의(정통망법상 명예훼손)로 회사원 정모(24·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강남패치는 특정 남녀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들이 강남 유흥업소 종사자나 해외 원정 성매매를 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강남패치 운영자 정씨는 임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회사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는 서울 강남 한 클럽에서 중견기업 회장 외손녀를 보고 질투심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범행했다고 털어놨다.

한남패치 운영자 양모(여·28)씨는 자신을 성형수술한 남자 의사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양씨는 지난달 30일 경찰이 자신의 범행 동기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다시 경찰 조사를 받겠다고 요구해 논란이 됐다.

남성들의 사진과 신상을 올리며 ‘성병 보균자’라고 거짓 폭로한 성병패치 운영자도 검거됐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6월 말 SNS 인스타그램에 '성병패치' 계정을 만들어 남성들의 거짓 신상정보를 올려 이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바텐더 김모(20·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그는 박모(40)씨 등 남성 50명의 신상 정보를 올리고선 ‘성병 보균자’라며 허위 사실을 퍼트렸다. 남성에게 성병이 옮았던 경험이 범행의 발단이었다. 김씨는 남성 혐오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드러나 남녀 혐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재기패치 운영자는 마지막으로 검거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특정 남성들을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이라며 이들이 성매수를 했다는 허위 사실을 퍼트린 혐의로 이모(31·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이씨는 평소 조건만남이나 성매수를 하는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패치 운영자들도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남성 사진과 신상을 퍼트린 오메가 패치 운영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패치 유행을 ‘관심병’ 때문에 발생한 ‘SNS 폭로전’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패치의 목적은 남의 관심을 끌면서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SNS는 관심 받고 싶은 심리를 부추겼고 마침내 SNS 폭로전으로까지 번졌다”고 진단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남패치는 허위 사실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힘을 행사하면서, 자신이 마치 통제 권한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과 관심을 받으며 왜곡된 심리를 키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패치 기저에 놓인 혐오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번 패치 사건으로 여성혐오는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강남패치 운영자는 여성이면서도 다른 여성을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는 한국사회의 혐오가 남녀를 떠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웅혁 건국대 교수는 “남녀가 서로 본인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생각에서 반감이 생겼다”며 “이런 혐오가 심해지면 스킨헤드나 KKK 조직 같은 혐오단체로 번질 수도 있다”고 했다.

○○패치 운영자들이 개인적인 앙금을 ‘고발’이라는 미명아래 감추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개인적인 불만을 마치 사회 문제처럼 부각시켜 주목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허위사실을 과대 포장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뒤, 자신의 억울함을 슬그머니 털어놔 공감을 사려고 한다”면서 “‘부당한 것들을 고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고발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